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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조선엔 ‘시골판사’만 있고 ‘재판거래’는 없다

기사승인 2018.09.11  08:2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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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수첩] 핵심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 시위가 아닌 박보영 전 대법관의 침묵이다

“퇴임 후 시골판사를 자청한 박보영 전 대법관이 오늘 전남 여수시 법원으로 출근했습니다. 하지만 첫 출근길은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옛 판결에, 강하게 항의했습니다.” 

어제(10일) TV조선 ‘뉴스9’에서 보도한 <대법관 출신 ‘시골판사’ 항의 속 첫 출근> 리포트 가운데 일부입니다. 박보영 전 대법관이 이른바 ‘쌍용차 판결’과 관련해 항의를 받으며 출근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많은 언론이 박 전 대법관이 전관예우를 거부하고 ‘시골판사’를 선택한 부분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습니다. 오늘(11일) 조선일보는 “퇴임한 대법관이 연 수입 수억원이 보장된 대형 로펌 취업과 변호사 개업을 마다하고 시·군 판사를 선택한 것은 처음”이라며 다시 한번 의미부여를 하더군요. 

   
▲ <이미지 출처=TV조선 화면 캡처>

재판거래 의혹이 불거진 ‘쌍용차 판결’ … 하지만 박보영 전 대법관은 침묵했다

이미 고발뉴스를 비롯해 많은 언론이 관련 내용을 보도했지만 박보영 전 대법관의 ‘시골판사행’에 박수만 칠 수 없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대법관으로 재직하면서 사회적 약자와 서민들을 위한 판결을 내렸던 대법관은 아니었습니다. 양승태 대법원 체제에서 재판거래 의혹이 불거진 판결을 맡기도 했던 당사자이기도 합니다. 

저는 전직 대법관이 전관예우를 거부하고 지역의 ‘작은 법원’을 선택한 것은 평가할 부분이 있다고 보지만 그렇다고 박 전 대법관에게 제기되고 있는 의혹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박보영 전 대법관의 ‘첫 출근’이 왜 험난했는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왜 그의 ‘첫 출근’에 항의시위를 하러 갔는지 언론이 구체적으로 언급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박보영 전 대법관은 지난 2014년 쌍용차 노동자들이 낸 정리해고무효소송을 기각했습니다. 1심과 2심은 모두 쌍용차 정리해고 결정이 절차상 하자와 경영상 긴박함이 없었다며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박보영 전 대법관은 하급심 판단을 뒤집고 사측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문제는 박 전 대법관이 사측의 손을 들어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판결이, 양승태 대법원 시절 재판거래 의혹이 제기된 대표적 판결 가운데 하나라는 점입니다. 이는 진상조사가 필요한 부분이면서 동시에 본인이 직접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물음에 답을 해야 한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쌍용자동차(쌍용차) 정리해고 사건을 파기 환송한 이유를 들어야겠다. 우리는 재판거래가 있었다고 믿고 싶지 않고, 박보영 판사 또한 재판거래에 연루됐다고 믿고 싶지 않다” “회사가 정리해고 요건을 제대로 갖췄다고 판단한 이유와 회계조작이 없었다고 보는 근거, 이로 인해 30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 무관하다고 보는 보편 타당한 이유를 설명해 달라”는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질문에 최소한의 입장 표명을 했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 <사진출처=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 페이스북>

‘첫 출근길’ 험난? … 박보영 전 대법관의 침묵에 초점을 맞춰야 했다

하지만 박 전 대법관은 침묵했습니다. 그는 경찰의 삼엄한 경호 속에 관용차를 타고 도착한 뒤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기자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출근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박 전 대법관은 출근 이후 “고향 쪽에서 근무하게 돼 기쁘다”는 소감만 밝혔습니다. 쌍용차 문제는 끝내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상당수 언론이 관련 내용을 보도하며 ‘첫 출근길 험난’에 초점을 맞춰 보도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이미 박 전 대법관과 관련해선 ‘시골판사’라는 부분에 방점을 찍으며 호평 일색이었던 보도가 많았습니다. 

그렇다면 어제(10일) 시점에선 △왜 그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항의를 받았는지 △문제의 ‘쌍용차 정리해고 재판’은 무엇인지 △왜 박보영 전 대법관은 입장을 밝히지 않고 침묵했는지에 무게중심을 두는 보도가 나갔어야 한다고 봅니다. ‘첫 출근길이 험난했다’가 아니라 ‘왜 박보영 전 대법관은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나’가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 박보영 전 대법관이 10일 오전 광주지법 순천지원 여수시법원에 첫 출근하는 과정에서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항의 집회 등을 피해 경호원인력의 보호를 받으며 법원 입구로 향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하지만 많은 언론이 ‘첫 출근길 험난’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잠깐 제목만 한번 보실까요?

<‘시골판사’ 박보영 前대법관, 쌍용차 노동자 항의 속 ‘첫 출근’> (머니투데이)
<‘시골판사’된 박보영 전 대법관 첫 출근 험난> (한겨레)
<‘시골판사’로 부임한 박보영 전 대법관, 첫 출근 ‘얼룩’> (국민일보) 
<시골판사 자청했지만…박보영 전 대법관 험난한 출근길> (MBC) 
<‘대법관 시골판사’ 첫 출근길엔 민노총 시위> (조선일보) 
<‘시골판사’ 박보영 전 대법관 첫 출근 ‘험난’> (연합뉴스) 

많은 언론이 ‘첫 출근길 험난’에 초점을 맞추긴 했지만 그래도 ‘재판거래 의혹’에 대해선 짧게라도 언급은 했습니다. 하지만 TV조선은 어제(10일) ‘뉴스9’에서 리포트 하면서 ‘재판거래 의혹’이라는 단어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여수까지 가서 박보영 전 대법관을 면담하려 했던 핵심적인 이유가 바로 ‘재판거래 의혹’ 때문이었지만 TV조선 리포트엔 없었습니다. 

“박(보영) 전 대법관의 출근길을 막은 사람들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었습니다. 박 전 대법관이 지난 2014년 쌍용차 정리해고 무효판결을 파기환송한 데 대해 해명과 사과를 촉구했습니다”가 전부입니다. 

‘시골판사’라는 호칭은 이제 그만! 그는 조사 받아야 할 ‘의혹 당사자’

이미 고발뉴스를 통해 언급한 적이 있지만 ‘논란’이 제기된 박보영 전 대법관의 판결은 이외에도 많습니다. 2014년 8월  철도노조 파업 사건에 대한 상고심에서 노조원들의 업무방해와 관련해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한 것도 박보영 대법관이었습니다. 이 판결 역시 1심과 2심의 무죄판결을 뒤집었습니다. 

‘철도노조 판결’도 양승태 대법원 시절 재판거래 의혹을 받고 있는 대표적인 판결 가운데 하나입니다. 철도노조와 쌍용차 정리해고 판결 모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작성된 이른바 ‘VIP보고’ 문건에 “국정 협조사례”로 언급돼 있죠. 두 판결의 당사자가 박보영 전 대법관이라는 점에서 진상조사가 필요한 대목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언론은 ‘시골판사’라는 점을 주목합니다. 그래서 ‘첫 출근이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시위로 험난 또는 얼룩졌다’에 초점을 맞춥니다. 왜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지, 왜 여수까지 가서 박 전 대법관과 면담하려 하는지에 대한 부분은 ‘시골판사’라는 부분에 가려집니다. 

저 역시 관련 언론보도 문제점을 언급하며 ‘시골판사’라는 호칭을 사용했지만 이제부턴 그 호칭을 사용하지 않으려 합니다. ‘양승태 대법원’ 시절 자행된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는 조사를 받아야 할 ‘의혹 당사자’이기 때문입니다. ‘시골판사’만 있고 ‘재판거래’는 없는 TV조선 리포트가 반쪽자리라고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media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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