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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놈만 팬다”는 김성태, 그와 닮은 ‘박근혜의 골든타임’

기사승인 2018.08.21  14: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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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성태의 와이드뷰] 토론과 협치가 부재한 정치인들의 무의식 대변

언어는 종국엔 무의식의 발로다. 의식은 말할 것도 없다. 프로이트는 그래서 말실수 역시도 무의식의 발로라 주창했다. 사람의 말실수는 물론 말 습관까지도 새겨봐야 할 이유다. 일반인인이 그러한데, 정치인의, 정당 대표의 언어는 오죽하랴. 

“모두 물에 빠뜨려 놓고 꼭 살려내야 할 규제만 살려두도록 전면 재검토를….” 

구속 수감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그 좋은 예다. 위 발언은 지난 2016년 2월 열린 제9차 무역투자진흥회의 자리에서 박 전 대통령이 든 비유다. 기업인, 정부 등 관계자들과 수출 회복 및 투자 활성화 방안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였다. 박 전 대통령은 이런 하등 관계없는 자리에서도 기어이 '세월호 참사'를 연상시키는 비유를 들었더랬다. 이를 두고 역사학자 전우용은 당시 이런 일침을 놨다. 

“‘골든타임’에 이어 ‘물에 빠뜨린다’까지. 이런 말들이 뭘 상기시킬지 모르는 걸까요, 아니면 의식 깊은 곳에 그 배가 가라앉아 있기 때문일까요?”

   
▲ 2014년 4월16일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전남 진도 해상에서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 사고 상황에 대해 보고 받고 있는 모습. <사진=청와대 제공, 뉴시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이후 유독 아껴 쓰는 표현이 바로 이 ‘골든타임'(Golden Time)이었다. 먼저 원뜻을 보자. 방송에서는 가장 중요한 시간대인 '프라임(prime) 타임'과 같은 시간대를 가리키지만, 사건·사고에서는 인명을 구조하기 위한 1~2시간의 절체절명의 금쪽같은 시간을 칭한다. 

신기하게도,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든 정치든, 전 분야에 걸쳐 이 ‘골든타임’이란 용어를 종종 비유로 들었었다.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심지어 2015년 연말엔 이른바 ‘관심법안’의 국회통과가 늦어지자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아 속이 타들어 가는 심정”이란 비유까지 들었다. 언어 차원과 그 언어가 뜻하는 실제를 잘 구분하지 못한 것이 분명한 언어 습관의 ‘나쁜 예’라 할 만하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세월호 참사의 골든타임 때 박 전 대통령이 무얼 했는지 다 알게 됐다. 꽤나 길게 박 전 대통령의 ‘골든타임’을 거론한 건 다 이 한 사람 때문이다. 어제(20일), 아니 종종 아주 괴이한 표현법을 보여주는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들개’ 김성태는 왜 자꾸 공격적 언사를 내비치나 

“(<주유소 습격사건> 영화에서) 양아치 건달들이 모여서 나쁜 짓을 하는데 그중에 하나는 집중해서 한 놈만 패자는 얘기를 합니다. 끝장을 보여준 이 투지는 사실상 야당으로서 가장 무서운 무기입니다.”

김 원내대표가 지난 20일 경기도 김포 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연찬회 겸 대토론회 연단에 올라 한 발언이다. “한 놈만 패자”를 유독 강조한 그의 발언은 “동네 조폭, 들개, 건달이 되자는 것은 아니지만, 끝장을 볼 수 있는 야당의 무서움으로 정기국회를 맞이하자”로 이어졌다. 강한 야당의 선명성을 강조하는 와중에 나온 발언이었을까.  

“영화 <주유소 집중사건>의 명대사처럼 ‘한놈만 패는’ 집중력이 필요하다. 끈기와 집중력으로 집요하게 파고드는 전략이 필요하다. 정확한 ‘조준사격’이라면 더 좋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무차별 난사’도 나쁘지 않다. 정기국회 국정감사에 들어가기에 앞서, 각자 상임위별로 보도자료 100개, 질의자료 50개 정도는 사전에 준비하는 성의를 보일 필요가 있다. ‘카운터펀치’ 한방이 아니더라도, 가랑비에 옷 젖듯 상대는 의외로 ‘잽’에 무너질 수도 있다.”

   
▲ 20일 오전 경기도 과천시 공무원 인재개발원에서 진행된 자유한국당 2018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김병준 비대위원장과 김성태 원내대표 등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이날 김성태 원내대표가 배포한 소책자에 담긴 문장이다. 그는 직접 쓴 ‘우리는 야당이다’이라는 글에서 위와 같이 주장했다. 야구를 비유에 들기도 했지만, 평소 즐겨 쓰는 ‘들개’와 더불어 이 “한 놈만 패는”과 엇비슷한 뉘앙스의 ‘조준사격’, ‘난사’, ‘카운터펀치’, ‘잽’ 등 총기와 권투와 같은 공격성이 비치는 언어가 난무했다. 또 20일 <한겨레>에 따르면, 아래와 같은 문장들이 글 안에 녹아 있다고 한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단순하게 말하고, 단순하게 행동해야 한다. 대중은 복잡한 것을 싫어한다.”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하는 수준에서 대중이 알아듣는 주파수를 통해 전파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당에서 안희정이 실패한 이유는 ‘20세기 철학’ ‘통섭’같은 대중의 주파수에서 벗어난 용어 선택 때문이다.” 

들개 말고 국민을 위한 안내견으로 거듭나시라 

안희정 전 지사까지 들먹인 김 원내대표의 이러한 지론과 언어습관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정부여당과 끝까지, “한 놈만 패는”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쉽게 설명하고자 했을 것이다. 헌데, ‘박근혜의 골든타임’처럼 꼭 그런 표현을 써야했는지는 의문이 일수밖에 없다. 

꼭 “한 놈만 패자”는 정신으로 무력과 폭력을 동원하고, 총으로 조준사격까지 해서 쓰러뜨리고, 카운터펀치를 날려서 KO로 상대를 무너뜨리는 공격적 언사만이 능사인가. 그런 정서를 내포한 정치가 김성태의 ‘들개’ 정치인가. 이렇게 묻고 싶은 이유는 앞서 언급한 ‘언어’와 ‘실제’ 사이의 간극 때문이다. 

잠시, 지난 5월 5일 국회 앞에서 단식 농성 중이던 김성태 원내대표가 한 남성에게 실제 주먹으로 턱을 가격 당했을 당시 상황을 떠올려 보자. 같은 날 긴급 의원총회 자리에서 김 원내대표는 “테러가 아니라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고 드루킹 댓글조작 특검이 수용되는 그날까지 끝까지 분노하고 싸우겠다”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당시 홍준표 당 대표 역시 “제가 금년에 23년째 정치를 하는데 나는 국회 내에서 국회의원이 이렇게 얻어맞는 거 처음 봤다”며 “국회 안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이제 그것도 제1야당 원대대표를 이런 식으로 테러하기 시작하면 나라가 어디로 가겠는가”라며 거들었다. 이후 김 원내 대표를 ‘한 대’ 때린 이는 부산 출신 지지자로 밝혀졌지만, 자유한국당은 ‘테러’ 운운을 굽히지 않았더랬다.  

   
▲ 지난 5월5일 오후 드루킹 특검을 촉구하며 3일째 노숙 단식을 하던 중 한 남성에게 한차례 턱을 가격당해 치료를 받은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이날 밤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열린 긴급 비상의원총회에 목 깁스를 하고 참석해 홍준표 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언어는 무의식의 발로다. 그래서 한 사람의 언어습관은 그 사람의 품격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저 ‘막말’이 아닌 글로 표현한 경우는 확신에 가깝다. ‘박근혜의 골든타임’의 경우는 어쩌면 그 골든타임을 끝내 극복하지 못한 박 전 대통령의 왜곡된 트라우마의 발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김성태 원내대표의 “한 놈만 팬다”의 경우는 어떻게 봐야 할까.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당 지지율과 흉흉한 민심을 극복하기 위한 차원으로 애처롭게 이해해야 할까. 그보다는 토론이나 협치가 부재한 한국 정치, 정치인들의 무의식을 대변한다고 보는 게 더 적절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정치인들이 국민을 위한다면, ‘들개’가 아닌 국민을 위한 ‘안내견’이 돼야 하지 않을까. 

하성태 기자  

하성태 기자 woody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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