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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 7시간’ 모른다던 김기춘의 변신, 그의 비참한 말로

기사승인 2018.08.17  14:4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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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제징용 피해자 패소 모의…반국가적 재판 뒤집기와 사법농단 획책

   
▲ 2014년 10월28일 대통령비서실 등에 대한 국정감사가 열린 서울 여의도 국회 운영위원회 회의실에 김기춘(왼쪽) 대통령비서실장, 김관진(오른쪽) 국가안보실장 등 관계자들이 출석해 있다. <자료사진, 뉴시스>

“오늘날 위성에서도 내려다보고 심지어 적의 무인기가 서울 상공을 다니면서 촬영을 하고 이렇게 하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국가원수의 위치를, 비록 지나간 일이든 현재든 앞으로든 정확한 특정 시간의 어느 위치를 말씀드린다는 것은 장차 경호상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저희들은 특정한 위치를 말씀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 정부에서도 그렇게 해 왔습니다.”

지난 2014년 10월 28일 국회 대통령비서실 국정감사 자리. 당시 청와대 김기춘 비서실장은 실로 당당했다. ‘박근혜 세월호 7시간’과 관련 집요하게 추궁하는 여야 의원들을 상대로 김 비서실장은 “대통령께서는 아침에 일어나시면 그것이 출근이고 주무시면 퇴근이라고 생각을 한다”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었다. “대통령 계시는 곳이 바로 대통령 집무실입니다”라는 명언(?)도 바로 이때 나왔다. 

“대통령께서는 지금 말씀하신 대로 아침에 일어나셔서 주무실 때까지가 근무시간이고 어디에 계시든지 간에 집무를 하고 계시고 관저도 집무실의 일부인 것이 틀림없습니다. 다만 그 위치를 저는 지금도 말씀드릴 수 없다는 것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말씀드릴 수 없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충성했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 그렇게 대통령 박근혜의 충직한 호위무사이자, 한때 국정농단의 배후가, 또 다른 비선실세가 김기춘 비서실장이 아닌가 하는 의문까지 낳았던 바로 그 2인자의 태도가 이제는 돌변했다. 오랜 구속으로 심신이 지친 상태여서일까, 나이면 ‘몰아주기’ 전략인 걸까. 최근 검찰 조사에서 “박근혜의 죄”를 시인하고 나섰다는 소식이다. 헌데, 그 정황이 실로 충격적이다. 

손석희의 분노와 김기춘의 “박근혜 직접지시” 진술 

“일제강점기 우리 국민이 피해자인 손해배상 소송을 두고 청와대, 관계부처, 그리고 대법원을 대표하는 대법관까지 모여서 ‘재판을 어떻게 해야한다’는 식의 논의를 한 정황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삼권분립이 뿌리째 흔들리는 일입니다. 또한 그에 못지 않게 전범국의 전범기업을 위해서 피해국의 대통령 등 수뇌부들이 자국의 피해자들에게 불리하도록 일을 도모한,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손석희 앵커의 확실히 분노하고 있었다. 16일 <뉴스룸>에서 <청-외교부-대법관 회동…국가가 나서 '전범기업' 손 들었나>와 관련 뉴스를 전하던 손 앵커의 목소리는 꽤나 격한 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청와대와 법무부, 외교부와 대법원이 한 자리에 모여 강제 징용 피해자들의 재판을 대법원에서 패소하게 만드는 반국가적인 계획을 모의하고 실행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국민이 누가 있겠는가. 

검찰수사 결과로 드러난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2013년 12월, 강제징용 피해자 총 9명이 일본 전범 기업 두 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낸 사건과 관련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앞두고 있던 어느 일요일 오전, 김기춘 비서실장의 요청으로 당시 법원행정처장이던 차한성 대법관이 청와대 공관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했다고 한다.  

   
   
▲ <사진출처=JTBC 화면캡처>

이 자리엔 차한성 대법관을 비롯해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윤병세 외교장관, 황교안 법무장관이 참석했고, 이들은 청와대와 외교부가 미리 준비한 “일본 기업에 배상 책임을 물으면 한일 관계가 악화 된다”는 요구를 차한성 대법관에 전달했다. 이런 회의가 수차례 이뤄졌다고 한다. 이 건은 결국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올라갔고, 아직까지 대법원은 결론을 내지 않고 있다. 박 전 대통령과 청와대의 뜻이 반영된 셈이다. 

“삼청동 비밀회동으로 불리는 이 자리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직접 지시를 받았고, 이후에 보고까지 이뤄진 것으로 검찰이 확인했다고 합니다. 시민사회에 국가란 대체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게 하는 내용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손 앵커의 말마따나, 박근혜 정부 하의 삼권 분립은 말 뿐이었다는 것이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박 전 대통령은 이러한 회동과 그 내용을 직접 보고받았고, 이런 보고 자리에 김기춘 비서실장은 물론 정홍원 전 국무총리, 박준우 전 정무수석 등 청와대 고위 관계자들도 함께였다고 한다. 청와대 전체가 이러한 사법거래를, 반국가적인 재판 뒤집기와 사법농단을 획책했던 것이다. 

일부 언론에서 ‘김기춘의 배신’이라 칭하는 증언이 바로 여기서 등장한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이 회동과 보고와 관련 검찰에 “당시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하자 대법원과 이야기 하라고 직접 지시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16일 <한겨레>에 따르면, 김 전 실장이 지난 14일 검찰 조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면서 당시 행정부와 사법부의 부적절한 회동의 책임을 박 전 대통령에게 떠넘기는 진술을 했다는 것이다. ‘세월호 7시간’을 철저히 감췄던 그의 전력을 떠올린다면, 확실히 ‘변신’이라 부를 만 하지 않은가. 

‘화무십일홍 권불십년’의 산증인 김기춘의 변신 

“(최순실씨와 관련해) 보고받은 적 없고, 알지 못합니다. 만난 일도 없습니다. 통화한 일도 없습니다.”

지난 2016년 국정농단 사태 당시 김 전 실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순실의 존재를 묻는 질문에 위와 같이 딱 잡아 뗀 바 있다. 어디 그뿐인가. 그의 이러한 선택적 기억 상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영화가 바로 현 최승호 MBC 사장이 만든 다큐멘터리 <자백>(2016년)이다. 

“전 모르는 일입니다”, “기억이 없습니다”, “나는 간첩을 조작한 일이 없습니다”, “사법부에서 한 일인데 저하고 관계없는 일입니다”, “제가 수사한 적 없어요” 등등. 

과거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 시절, 간첩으로 조작했던 피해자들을 아느냐는 최승호 감독의 질문에 김기춘 전 실장은 시종일관 평정을 유지하며 ‘모르쇠’로 일관했었다. 그랬던 그가 이제 그토록 충성을 받쳤던 ‘박정희의 딸’ 박근혜 전 대통령의 죄를 검찰에 진술하기에 이른 것이다. 

   
▲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과 관련해 재판거래 의혹에 연루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지난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이러한 ‘김기춘의 변신’을 우리는, 국민들은 똑똑히 봐둘 필요가 있다. 평생 ‘권력의 시녀’로 살았고, 그 권력 밑에서 중앙정보부를 호령하고 법무부 장관을 지냈으며, 국회의원과 청와대 ‘왕실장’까지 지냈던 인물이 이제는 자신이 모셨던 대통령의 죄를 진술하고 있다. 

이유는 명확해 보인다. 전직 대통령 박근혜에게 죄를 몰아주고, 자신의 죄를 감경받기 위해서, 단 하루라도 ‘감방’ 생활을 덜기 위한 몸부림 아니겠는가. 부정한 권력에 기대 권세를 누리고자 하는 이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김기춘의 몰락을 똑똑히 알릴 필요는 차고 넘친다고 할 수 있다. 아니, 사법농단 사건으로 인해 죄가 추가될지 모를 이 김기춘의 변신을 만방에 알려야 한다. 김기춘이야말로 ‘화무십일홍 권불십년’의 산증인이기에.  

하성태 기자 

하성태 기자 woody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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