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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 아니고 ‘노동자’입니다

기사승인 2018.08.06  08:4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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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캡처에세이] ‘저널리즘 토크쇼 J’라면 노동자라는 단어를 써야 합니다

“최저임금 당사자는 저임금 근로자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저임금 근로자는 최저임금 인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최저임금 인상률이 저임금 근로자에게 도움이 되는 정도의 인상률인 것인지, 정작 당사자(최저임금 근로자)의 입장을 담은 보도는 없었습니다.” 

어제(5일) KBS 1TV에서 방영된 <저널리즘 토크쇼 J>(토크쇼 J) 가운데 일부입니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언론보도의 문제점을 짚었습니다. 미디어비평 프로그램답게 보수언론과 경제지들이 최저임금 보도를 어떻게 ‘비트는지’ 날카롭게 짚었습니다. 

   
▲ <이미지 출처=KBS 화면 캡처>

보수언론·경제지 최저임금 보도 문제점을 비판하면서 나타난 ‘옥의 티’ 

이들 언론은 최저임금 당사자인 노동자들의 입장을 담은 보도는 드물었고 대부분 취재원이 중소기업중앙회, 소상공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경총, 전경련 회원사들이 운영하는 한국경제연구원 등이었습니다. 대부분 사용자 입장에서 기사를 작성했다는 얘기입니다. 

‘토크쇼 J’는 편의점 업주의 입장을 담은 기사를 내보내더라도 ‘을과 을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보도’가 많았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어제(5일) 방송에서 ‘옥의 티’라고 해야 할까요. 불편했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토크쇼 J’가 최저임금 보도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근로자’라는 단어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근로자라는 단어에 무슨 문제가 있냐구요? 딱히 문제가 있다라고 단정할 순 업지만 제가 봤을 땐 적어도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에선 근로자보다는 노동자라는 단어를 써야 한다고 봅니다. 

5월1일은 전세계적으로 ‘노동자의 날’이지만 대한민국에선 공식명칭이 ‘근로자의 날’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헌법에서도 ‘노동’ 대신 ‘근로’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헌법에서도 ‘근로’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무슨 문제냐구요? 

‘노동자의 날’(5월1일)은 1880년대 미국에서 노동자들이 노동시간 단축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벌일 때 수많은 노동자가 죽거나 다친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국제 기념일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노동절’을 여전히 ‘근로자의 날’로 부르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근로자의 날’로 부르는 것이 온당한가라는 문제제기를 해야 할 시점이라고 봅니다. 

사실 ‘근로자’라는 단어가 주류로 부상한 건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입니다. 지난 5월1일 방송된 EBS <지식채널e> ‘당신은 누구입니까’를 보면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이 들어선 이후 언론에서 ‘노동자’라는 단어 대신 ‘근로자’를 사용하는 빈도가 급속하게 증가했다고 합니다. 

박정희 정권의 ‘정치적 용어’ 근로자 … 이제 언론부터 노동자로 바꾸자 

1920년 4월1일부터 1945년 8월31일까지 두 단어의 언론 노출 빈도를 보면, 노동자는 10만5806건, 근로자는 99건이었습니다. 언론이 노동자라는 단어를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했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1970년 12월1일부터 1987년 6월30일까지 두 단어의 언론 노출 빈도는 노동자가 9046건, 근로자가 2만3156건으로 역전됩니다. 이 기간동안 언론에서 근로자가 ‘주류 단어’로 부상했다는 말입니다. 

<지식채널e>는 “두 단어 사이의 수치 변화 사이에는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룩하기 위한 박정희 정권의 산업화가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실제 1963년 박정희 정권은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을 통해 ‘노동절’을 ‘근로자의 날’로 바꾸게 됩니다. ‘자본가와 대등한 입장에서 노동 계약을 맺는 사람’이 아니라 박정희 정권 산업화를 위해 근면하게 일하는 산업 역군 의미를 강조한 겁니다. 

   
▲ <이미지 출처=EBS1TV 지식채널e '당신은 누구입니까'편 화면 캡처>

저는 특히 한국에서 대중적인 언어였던 노동자가 근로자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일종의 ‘레드 콤플렉스’가 작동됐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른바 ‘노동자=빨갱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노동자라는 단어 사용을 기피하게 만들고 박정희 정권 산업화 과정에서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노동운동’을 탄압하기 위한 이데올로기 장치였다는 얘기입니다. 

한국에서 노동자라는 말이 근로자로 대체되는 과정 자체가 ‘폭압적이고 정치적’이었는데 문제는 근로자라는 단어를 상당수 언론이 그대로 쓰고 있다는 겁니다. 이런 단어를 계속 사용하고 있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고민을 해도 모자랄 판에 상당수 언론이 여전히 근로자라는 단어를 쓰는 것 – 저는 문제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런 언론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에서도 ‘노동자’라는 단어 대신 ‘근로자’를 쓰는 것을 보고 사실 적잖이 놀랐습니다. 박정희 정권의 ‘정치적 용어’인 근로자가 생각보다 문제의식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국제사회에서 노동자를 가리키는 영어 표현은 ‘worker’인데 우리 정부 당국자들은 계속 ‘employee’를 사용한다는 언론보도도 있습니다.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서까지 그런다고 하니 정말 문제가 심각해 보입니다. 

청와대는 지난 3월 헌법에 명시된 ‘근로’라는 단어를 개헌을 통해 ‘노동’으로 수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저는 언론부터 구시대적 단어인 근로자를 노동자로 바꾸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미디어비평 프로그램부터 한번 시작해 보는 게 어떨지요.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media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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