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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의 반격? 이런 제목은 쓰지 맙시다

기사승인 2018.07.12  16:5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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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평] ‘성폭력 사건’ 재판에서 ‘중계 보도’는 신중해야 합니다

<안희정의 반격 “김지은이 서울서 자고 간다며 호텔도 예약”> (국민일보 2018년 7월12일)
<본격화된 안희정의 반격, 그는 성공할까> (KBS 2018년 7월12일)
<반격 나선 안희정…전 비서실장·수행비서 증언 나선다> (뉴스1 2018년 7월11일) 
<반격 나선 안희정…증인 “안희정ㆍ김지은 격의없이 대화, 깜짝 놀랐다”> (한국일보 2018년 7월11일) 

지난 11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안희정 전 충남지사 재판을 다룬 일부 언론보도 제목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저는 이런 제목은 문제가 많다고 봅니다. 안 전 지사 재판이 비서 성폭행 의혹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포털에서 ‘안희정의 반격’이라는 키워드를 입력하고 기사를 한번 검색해 보세요. 수십 건의 기사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런 식의 제목뽑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저는 피해자가 있는 상태에서 가해자의 입장을 옹호하는 ‘주장’을, 언론이 기사 제목에 ‘반격’이라는 제목을 달고 반영하는 것은 상당히 문제가 많다고 봅니다. ‘성폭력 사건 보도’에 있어 기본도 제대로 지키지 않은 보도라고 생각합니다. 

   
▲ 수행 비서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1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4차 공판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성폭력 사건조차 ‘스포츠 중계’처럼 보도하는 언론

성폭력 사건은 엄연히 피해자와 가해자가 존재하는 ‘중대 사건’입니다. 언론이 관련 내용을 보도할 때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일부 언론은 여전히 신중하지도 않고, 피해자를 배려하는 최소한의 보도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재판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가해자와 피해자 측의 주장을 언론이 보도하는 것 자체를 나무랄 순 없습니다. 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일방적 주장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기사를 쓸 때는 물론 제목을 뽑을 때도 신중한 태도는 필수적입니다. 자극적인 표현이나 ‘2차 피해’를 줄 수 있는 제목 뽑기를 지양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안희정 전 충남지사 재판과 관련한 언론보도를 보면 기본적인 원칙도 무시한, 자극적인 기사와 제목이 많이 등장합니다. 서두에서 언급한 기사 제목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반격이라니요?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정무비서를 지난해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모두 4차례 성폭행하고 여러 차례 추행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희정 전 지사측 증인이 법정에서 안 전 지사에게 ‘유리한 증언’을 했다고 ‘반격’이라는 제목을 다는 게 온당한 태도일까요? 

‘안희정 전 지사 성폭력 사건’이 축구중계인가요? 정치 저널리즘에서 나타난 고질적 문제점이 고스란히 성폭력 사건에서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성폭력 사건조차 ‘스포츠 중계’처럼 보도하는 한국 언론 – 정말 문제가 심각합니다. 

언론보도로 인한 2차 피해 막기 위해 책자를 배포하면 뭘하나? 지키지도 않는 걸! 

지난 6월 8일 여성가족부가 한국기자협회와 함께 성폭력·성희롱 사건 관련 언론보도로 인한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성폭력·성희롱 사건, 이렇게 보도해 주세요!’라는 책자를 발간했습니다. 한국기자협회 188개 회원사 등에 배포했다고 밝혔는데, 제가 봤을 때 책만 배포했을 뿐 ‘현실에서는’ 전혀 반영이 안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책자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을까요? 연합뉴스가 보도한 내용을 잠깐 소개합니다. 

   
▲ 한국기자협회와 여성가족부(여가부)는 '성폭력․성희롱 사건, 이렇게 보도해 주세요'를 지난달 8일 기자협회 188개 회원사 등에 배포했다. <사진=여가부 제공, 뉴시스>

“‘씻을 수 없는 상처’나 ‘순결을 잃은’ 등도 사용하지 않아야 하는 표현으로 꼽혔다. 피해자의 상처는 극복되기 어려우며, 피해자는 무기력하고 나약할 것이라는 편견을 갖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성관계’나 ‘성추문’이라는 표현은 범죄라는 점을 희석시키고 성관계와 성폭력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므로 역시 잘못된 용어로 지적됐다.

최근 문제가 된 사례와 표현도 제시됐다. 문화계 성폭행 혐의 사건과 관련해서는 ‘연극계 미투 바람 연극제도 역풍 맞나, 미투에 문단이 두 쪽’ 등의 표현이 부정적 현상을 피해 사실 폭로 탓으로 돌렸다는 지적을 받았다. 

책자에 따르면 ‘몰래카메라’는 장난스러운 이미지를 덧씌우며 불법행위의 심각성을 희석하므로 불법촬영물이라는 정확한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 ‘리벤지 포르노’는 상업용 음란영상물의 일종으로 오해를 유발하고, 불법촬영 및 유통의 책임이 피해자에게 있는 것으로 오인하게 할 수 있으므로 보복성 영상물이라고 해야 한다.” (2018년 6월7일 연합뉴스 인용) 

핵심을 요약하면 성폭력 본질을 흐리는 표현이나 자극적인 제목은 가급적 삼가야 한다는 취지의 내용입니다. 구체적인 사례를 언급하면서 일선 기자들이 성폭력 보도에 있어 신중을 유지해 달라는 당부도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일선 현장에서 취재하는 기자들이 이 ‘원칙’ 잘 지키고 있나요? 제목을 뽑는 데스크들 역시 ‘성폭력 보도 가이드라인’을 준수하고 있나요? 

제가 보기엔 아닌 것 같습니다. ‘안희정 공판’과 관련한 보도는 이미 몇 차례 논란이 제기됐고, 그럴 때마다 끊임없이 비판을 받았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 6일 논평을 통해 “피해자 진료기록까지 들춰내 보도하는 언론의 행태”를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안희정 공판 보도’ 계속 비판받음에도 ‘자극적 보도’ 계속되는 이유는? 

민언련은 “(일부 언론이) 안희정 공판에서 김지은 씨 측이 증거 자료로 제출한 병원 진료 기록 내용을 ‘출혈’ ‘산부인과’ 등의 키워드를 앞세워 보도하고 있지만 진료기록은 개인의 사생활이 노출될 수 있는 내밀한 정보를 담은 자료”이기 때문에 보도에 신중해야 함을 지적했습니다. 특히 민언련은 “피해자가 진료기록을 법원에 제출했다는 이유로, 언론이 마치 ‘허가’라도 받은 양 그 내용을 앞다퉈 무분별하게 보도하는 것은 명백한 사생활 침해”라고 비판했습니다. 

   
▲ MBN은 3일 김지은 씨 진단서 내용을 자료화면까지 만들어 부각해 보도했다. <이미지 출처=MBN 화면 캡처>

문제는 지속적인 비판과 문제제기에 불구하고 자극적이고 본질을 훼손하는 보도가 계속 나오고 있다는 겁니다. 앞으로 ‘안희정 공판’을 계속 진행될 것이고 언론이 지금과 같은 보도태도를 계속 유지한다면, 양측의 상반된 주장들이 나올 때마다 언론보도는 ‘춤’을 출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안의 본질은 가려지고 ‘자극적인 제목과 표현’만 남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식은 곤란합니다. 민언련이 지난 6일 논평에서도 언급한 내용이지만 한국기자협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함께 제정한 ‘성폭력 사건 보도 가이드라인’을 보면 이런 부분이 나와 있습니다. 

“언론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사건이라고 해서 피해자나 가족의 사생활이 국민의 알권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유념하여야 한다.” 

그리고 가이드라인 내 ‘성폭력 사건 보도 실천요강을 보면 이런 부분도 있습니다. 

“사건과 무관한 피해자의 사생활에 대한 보도나 피해자의 피해 상태나 가해자의 범행 수법을 자세히 묘사하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를 해서는 안 된다.” 

‘안희정의 반격’이라는 제목을 뽑았던 기자와 데스크들에게 묻습니다. 안희정 공판이 스포츠 경기인가요? 신중을 기해야 할 사건을 꼭 ‘스포츠 중계’처럼 보도해야 직성이 풀리십니까?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media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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