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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기 문자 파문’에 침묵한 언론이 삼성을 옹호하는 방식

기사승인 2018.07.10  10: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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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평] 보수언론과 경제지, 정부의 정책기조 변화를 압박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인도 국빈 방문 중 삼성전자의 현지 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이재용 부회장과 만났다. 대통령 취임 후 첫 대면이다. 문 대통령은 이 부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공장을 둘러보고 대화도 나눴다. 청와대는 ‘통상적인 외교 일정’이라고 했지만, 재계에선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과 정부 관계가 개선되는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감이 크다. 삼성은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그런 기업의 해외 공장을 대통령이 방문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큰 뉴스거리가 되고 있다. 얼마나 비정상적 상황인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오늘자(10일) 조선일보 사설 <대통령의 삼성 공장 방문이 뉴스거리가 되는 非정상> 서두 부분입니다. 대통령이 기업인을 만나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인데, 그게 뉴스거리가 되는 ‘우리의 현실’이 너무 비정상적이라는 내용입니다. 

   
▲ <이미지 출처=조선일보 홈페이지 캡처>

삼성과 재계의 바람을 ‘교묘하게’ 사설 통해 이용한 조선일보 

재밌습니다. 제가 보기엔 이 사설이 좀 ‘비정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조선일보 지적처럼 대통령이 기업인을 만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이재용 부회장은 매우 ‘특수한 기업인’입니다. 다들 아는 것처럼 이 부회장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혐의로 2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됐고, 곧 대법원 최종심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에서 대통령이 ‘집행유예 중인 대기업 부회장’을 만난다? 당연히 뉴스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이게 왜 뉴스가 되냐’며 정색을 하더니 바로 자신이 하고 싶은 속내를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삼성과 재계의 바람을 사설에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를 테면 다음과 같은 부분입니다. 

“현 정부가 대기업에 적대적이라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정권 출범 직후 국정기획위원장이 ‘재벌이 가장 큰 기득권’이라고 한 이후 역대 어느 정권보다 강력한 반(反)대기업 기조를 취해왔다. 10대 그룹 중 검경이나 국세청·공정위 같은 사정기관의 수사·조사를 받지 않는 곳이 한 곳도 없다. 공정위 규제와 대주주 경영권을 약화시키는 법안들이 쏟아지고 있다. 대기업들은 경영권 위협 때문에 미래 투자는 엄두도 못 낼 판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문재인 정부의 ‘반대기업 기조’를 철회하라는 것이고, 여기에 더해 공정위 규제와 대기업 경영권을 약화시키는 법안들도 재검토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 사설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서 삼성의 불법·탈법 행위에 대한 언급도 △검찰의 삼성전자서비스 노조파괴 공작에 대한 지적도 없습니다. 오로지 “대기업을 적폐가 아니라 경제 운영의 파트너로 삼는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만 강조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재용 부회장의 만남에 지나치게 방점을 찍을 필요는 없지만… 

사실 일각에선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이번 만남을 계기로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가 ‘친기업’ 쪽으로 바뀌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우려는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재계의 일방적 바람이 반영된 해석으로 보고 있습니다. 만남 한 번을 가지고 곧바로 정부의 정책 기조가 선회했다고 보는 건 지나친 해석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오늘(10일) 한겨레가 사설에서 지적했듯이 “국내 기업이 외국에 진출해 국부를 키우고 정부가 이를 지원하는 것”은 사실 지극히 상식적이면서 당연한 일입니다. 이번 만남과 “불법행위를 저지른 재벌 총수에게 법과 원칙을 엄격히 적용하는 것은 구분해야 할 사안”이라는 한겨레의 지적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입니다. 더구나 대통령이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 만남을 불편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분명히 있습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혐의로 2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된 이재용 부회장이 대법원 최종심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잘못된 신호’를 줄 가능성은 항상 있는 거니까요. 

조선일보가 오늘자(10일) 사설에서 강조했듯이 “대통령의 삼성 공장 방문이 그 계기가 됐으면 한다”는 바람은, 재벌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이 봤을 땐 ‘잘못된 신호’가 될 수 있지만 삼성과 재계입장에서 보면 너무나도 절실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의 만남’을 계기로 정부의 정책기조 변화를 주문하는 언론이 많은 것도 ‘상당수 언론’이 재계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반영한 결과라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여전히 삼성은 한국 언론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최대 광고주이자 지원자이기 때문입니다. 

   
▲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이 9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 인근 노이다 공단에서 개최된‘삼성전자 제2공장 준공식’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장충기 문자 파문에 침묵한 언론이 원하는 것…정부의 정책기조 변화

사실 ‘장충기 문자’ 파문이 발생했을 때 이를 제대로 보도한 언론이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한국 언론의 자정능력과 개혁의지는 이미 대외적으로 검증을 받았다고 봅니다. 스스로 개혁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걸 만천하에 드러냈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수준’의 언론이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만남에 어떤 것을 기대하고 있는 지는 뻔합니다. “정부는 기업 애로를 정책에 반영하고 대기업은 투자와 일자리 창출로 화답”하는 만큼 “정부가 대기업과 선을 긋고 적대시”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조선일보 한번 보세요. 사설에서 노골적으로 ‘삼성 수사 중단’까지 요구하고 있습니다. 

“삼성그룹에 대한 수사는 2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다. 청와대가 사실상 전면에 나서 있다. 노조 설립 방해 사건에선 4차례 압수수색과 14명 구속영장 신청이라는 기록적인 사태가 벌어졌다. 삼성 반도체 공장의 비밀 공개며 바이오 계열사의 분식회계 문제, 계열사 보유 삼성전자 지분 매각 등 모든 부처가 저마다 건수를 찾아 삼성을 몰아붙이고 있다. 전체 수출의 20% 이상을 담당하는 기업을 잡지 못해 안달이다.” 

아마 앞으로 경제지를 비롯해 많은 보수신문이 비슷한 논지로 정부의 정책전환을 요구하고 나설 겁니다. 그리고 경제부처들의 정책기조 변경 또한 끊임없이 요구할 가능성이 큽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형성된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시도를 할 수도 있습니다. 

보수언론과 재계의 압박, 문재인 정부는 이겨낼까 

저는 문재인 정부가 재벌개혁이라는 기치를 갑자기 변경할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습니다. 다만 현재 경제상황이 문재인 정부에 유리하지 않다는 점이 조금 염려가 됩니다. 

핵심 경제정책 가운데 하나인 일자리 확충과 소득격차 해소는 답보상태이고, 미·중 무역전쟁의 후폭풍 역시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지와 조중동 등 보수언론이 “정부가 기업의 협조, 특히 대기업의 협조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압박을 가할 때 그리고 정부 일각에서 그런 목소리에 힘을 실을 때 정책기조 변화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일각의 우려를 충분히 이해한다는 얘기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만남에 너무 방점을 찍을 필요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습니다. 이번 만남을 계기로 보수언론과 재계의 정부에 대한 ‘압박’이 점점 교묘해지고 노골화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정부는 대기업을 적으로 봐서도 안되지만 대기업에 의존하려는 유혹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한국 경제에서 대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해서 최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사태 등에서 불거진 ‘갑질’ 논란 등 재벌의 폐해가 무시될 수는 없다 … 지난 정부 국정농단 사태의 시작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간 ‘독대’에서 시작됐다는 점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오늘자(10일) 경향신문 사설 가운데 일부입니다. 사실 대기업을 적으로 본다는 말도 문제가 있습니다. 대기업의 불법·탈법 행위에 대해 법과 원칙으로 대응하는 게 ‘적대적’인 행위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기업의 특권과 일탈행위가 문제지 그것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문제가 될 순 없습니다. 

아무튼 이번 만남을 계기로 우리 사회 기득권층은 정부에 대해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보수언론과 재계의 압박을 문재인 정부는 이겨낼 수 있을까요? 저도 당분간 면밀히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media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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