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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시계 국정원 개입 의혹’ - KBS는 리포트로 말해야 한다

기사승인 2018.06.26  16:4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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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수첩]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 관련 리포트, 왜 KBS에만 없나

“2009년 4월22일자 KBS 9시 뉴스 보도는 국정원 대변인실이 개입하여 이뤄진 것을 확인했다”는 이(인규) 전 부장의 진술과 관련해 KBS는 “확인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기자협회보가 지난 25일 보도한 <SBS “이인규 ‘논두렁 시계’ 해명 법적 책임 물을 것”> 기사 마지막 대목입니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를 이끌었던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 25일 A4 4장짜리 입장문을 기자들에게 보낸 것과 관련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전 부장은 해당 메일에서 이른바 ‘논두렁 시계 보도’는 국가정보원 소행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관련 내용을 어제(25일) 많은 언론이 다뤘습니다. 그런데 반드시 다뤄야 할 언론 가운데 하나인 KBS가 25일 메인뉴스 ‘뉴스9’에서 아예 관련 리포트를 생략했습니다. KBS와 SBS는 이른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품시계 수수의혹’ ‘논두렁 시계’ 보도의 직접 당사자입니다. 어떤 식으로 해명을 하든, 입장을 내놓든, 리포트로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어떤 사안을 보도하느냐 여부는 해당 언론사의 자율적인 판단이지만, 과거 KBS 보도와 관련한 의혹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사안은 KBS가 적극적으로 다뤄야 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 지난 2009년 4월 21일, 검찰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소환조사를 준비하고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에 대한 영장을 재청구한 가운데 이날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당시 임채진 검찰총장이 이인규 중수부장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기위해 구내식당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명품시계 수수의혹’ 보도, 확인이 필요하다는 KBS 

문제의 보도와 관련해 ‘어떤 문제점’이 있었는지 그리고 밝혀야 할 부분이 있다면 ‘앞으로 어떻게 밝혀 나가겠다’는, 최소한의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KBS의 입장은 KBS뉴스가 아니라 엉뚱하게도(?) 기자협회보 기사를 통해 접해야 했습니다. 공영방송 KBS가, 이처럼 논란이 불거진 사안을 자사 뉴스가 아닌 다른 매체를 통해 그것도 짧게 입장을 내놓는 것 – 저는 온당한 태도가 아니라고 봅니다. KBS의 ‘침묵’이 이해가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더구나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이 주장한 내용은 KBS가 공식입장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 전 부장이 기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는 이런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2009. 4. 22. KBS는 저녁 9시 뉴스에서 ‘노 전 대통령의 시계수수 사실’을 보도하였습니다. 저는 그날 저녁 종로구 자하문 밖에 있는 중국집 하림각에서 과거 워싱턴 주미대사관에서 함께 근무하여 알게 된 정순영 국회 전문위원, 김영호 행정안전부 차관 그밖에 다른 부처 고위 공무원 등 5명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식사 도중 대검 관계자로부터 ‘KBS 9시 뉴스에서 노 전 대통령 시계 수수 사실을 보도하였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보고를 받는 순간 원세훈 국정원장의 소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국정원의 행태가 생각나 도저히 화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마침 그 자리에 있던 원세훈 원장의 고등학교 후배인 김영호 차관에게 ‘KBS에서 노 전 대통령 시계수수 사실을 보도하였는데 이는 원세훈 국정원장이 한 짓이다. 원세훈 국정원장이 저에게 사람을 보내 노 전 대통령이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시가 2억원 상당의 피아제 남녀 손목시계 세트를 수수한 사실을 언론에 흘려 망신을 주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길래 제가 이를 거절하고 야단을 쳐서 돌려보냈는데도 결국 이런 파렴치한 짓을 꾸몄다. 정말 나쁜 X이다. 원세훈 원장은 차관님 고등학교 선배 아니냐. 원세훈 원장에게 내가 정말 X자식이라고 하더라고 전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2009년 4월22일 KBS ‘명품시계’ 보도는 ‘검찰발’이었다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이 언급한 2009년 4월22일 KBS보도는 어떤 내용일까요? KBS는 이날 ‘단독’으로 관련 뉴스를 보도했는데 리포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난 2006년 9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은 노무현 당시 대통령 측에 고가의 명품 시계 2개를 건넸습니다. 정대근 당시 농협 회장이 정상문 전 비서관을 통해 회갑 선물로 3만 달러를 건넨 시기와 일치합니다. 보석이 박혀있어 개당 가격이 1억 원에 달하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스위스 P사의 명품 시계였습니다. 

이와 관련해 박 회장은 검찰에서 노 전 대통령의 회갑을 맞아 선물용으로 2억 원을 들여 시계를 선물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또 노 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 부부를 위해 두개를 준비했다고도 말했습니다. 박 회장은 특히 시계 선물을 받은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고맙다는 인사까지 받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검찰은 이와 관련해 박 회장이 지난 1999년부터 해마다 수억 원 어치의 명품 시계를 사들인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2009년 4월22일 KBS ‘뉴스9’) 

   
▲ ‘논두렁 시계’ 보도들의 첫 출발은 KBS였다. KBS <뉴스9>은 2009년 4월 22일 ‘회갑 선물로 부부가 억대 시계’란 제목의 단독 리포트에서 “박연차 회장은 노무현 당시 대통령 측에 고가의 명품 시계 2개를 건넸다”고 보도했다. <이미지 출처=KBS 화면캡처>

KBS보도를 보면 분명 “박 회장은 검찰에서 노 전 대통령의 회갑을 맞아 선물용으로 2억 원을 들여 시계를 선물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 회장은 특히 시계 선물을 받은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고맙다는 인사까지 받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라고 보도했습니다. 누가 봐도 검찰을 통해 관련 내용을 확인하고 취재한 내용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 ‘주장’에 따르면 ‘KBS 해당보도’가 국정원 작품이라는 얘기가 됩니다. KBS가 검찰을 통해 확인 취재한 것이 아니라 ‘국정원 공작에 의한 작품’일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KBS가 이 전 부장 해명에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내놓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기자협회보를 통해 “확인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인규 전 중수부장 주장 반박한 SBS, 법적 대응 예고 

KBS의 ‘침묵’과는 달리 SBS는 어제(25일) ‘8뉴스’에서 이인규 전 부장의 주장을 반박했습니다. 법적 대응까지 예고했습니다. ‘SBS의 논두렁 보도’ 역시 배후에 국정원이 있다는 심증을 굳히게 됐다는 이 전 부장의 주장이 “확인되지 않은 주장으로 SBS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SBS는 지난해 언론단체와 시청자 위원, 언론노조 SBS본부 등이 참여한 진상조사위원회 조사 결과 국정원 개입 정황을 찾을 수 없었다고 결론 내린 바 있습니다. 

SBS의 해명과 입장을 두고도 논란이 제기되고 있지만 적어도 SBS는 의혹이 제기된 사안에 대해 최소한의 입장은 밝혔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당시 ‘논두렁 리포트’와 관련해 좀 더 상세하고 설득력 있는 해명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불거진 의혹에 침묵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 <이미지 출처=SBS 화면캡처>

하지만 KBS는 여전히 ‘공식입장’도 없고, 뉴스나 리포트를 통해서도 언급이 없습니다.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이 “2009년 5월13일 SBS ‘논두렁 시계 보도’ 이후 국정원 소행임을 의심하고 여러 경로를 통해 그동안의 보도 경위를 확인한 결과 4월22일 KBS 9시 뉴스 보도는 국정원 대변인실이 개입하여 이루어진 것을 확인했다”고 ‘단정’을 했는데도 그냥 침묵으로 일관합니다. 

이건 공영방송의 온당한 태도가 아닙니다.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이 왜 지금 시점에서 이런 입장을 내놓았는지 그것을 짚는 것과는 별개로 KBS는 ‘뉴스9’에서 시청자들에게 관련 의혹에 대한 상세하게 해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체적인 취재나 진상조사를 통해서 말이죠. KBS 구성원들이 분명히 인식해야 할 건, 많은 시민들이 지금과 같은 ‘침묵’을 보려고 공영방송 KBS 정상화를 기대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media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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