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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별세, ‘3김시대’ 종언…방러 중 문대통령도 애도

기사승인 2018.06.23  15: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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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 “한국 현대사 그 자체로 기억될 것”…홍준표 “큰 어른 잃어버렸다”

   
▲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향년 92세로 23일 오전 8시15분 별세했다. 사진은 김 전 총리가 71년 당시 주한 미 대사관에서 열린 미국 독립기념일 축하 리셉션에서 김영삼 의원, 한병기 의원과 대화하는 모습.<출처=운정재단 홈페이지, 뉴시스>

한때 고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3김 시대’를 이끌었던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8시 15분 향년 92세로 별세했다. 

김 전 총리는 서울 신당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으며 유족으로는 아들 진씨, 딸 복리씨 1남1녀가 있다. 부인 박영옥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형 박상희씨의 장녀로 지난 2015년 별세했다. 

1926년 충청남도 부여에서 태어난 김 전 총리는 공주중·고등학교와 서울대 사범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1961년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5·16 쿠테타를 주도했으며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를 창설해 초대부장에 취임했다. 

1963년 공화당 창당을 주도했고 그 해 치러진 6대 총선에서 당선된 뒤 7·8·9·10·13·14·15·16대를 거치며 9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 전 총리는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을 막후에서 이끌었으나, 대일 청구권 문제의 핵심이 된 ‘김종필-오히라 메모’ 파동으로 6·3사태가 일어나자 1964년 외유길에 올랐다.

   
▲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향년 92세로 23일 오전 8시15분 별세했다. 사진은 김종필 전 총리가 72년 1월 8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외무부의 업무현황 보고를 듣는 모습. <출처=운정재단 홈페이지, 뉴시스>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 민자당 후보를 지원했으며 1995년 민자당을 탈당,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을 창당했다. 1997년 자민련 후보로 대선에 출마했으나 선거 막판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와 극적인 ‘DJP 연합’을 이루며 김 전 대통령을 당선시키는 역할을 했다. 

박정희 정권과 김대중 정부에서 두차례 국무총리를 지냈다. 2004년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 자민련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을 가결시켰고 그 역풍으로 17대 총선에서 참패했다. 김 전 총리는 비례대표 후보로 10선을 노렸지만 실패했고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박범계 수석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우리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김 전 총리의 별세를 국민과 함께 애도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박 수석대변인은 “5‧16군사 쿠데타, 한일 국교정상화, 9선의 국회의원, 두 차례의 국무총리, 신군부에 의한 권력형 부정축재자 낙인, 자민련 창당, 3김시대 등 고인의 삶은 명암이 교차했다”며 “가히 한국 현대사를 풍미했다 할 만하고, 이제 공식적으로 3김시대가 종언을 고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고인의 정치 역경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살아가는 후대에게 미루어 두더라도, 고인은 한국 현대사 그 자체로 기억될 것”이라며 애도를 표했다. 

김성원 자유한국당 원내대변인은 논평에서 “대한민국 정치사의 거목 김 전 총리님의 서거를 가슴 깊이 애도하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변인은 “고인께서는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경제 발전을 통해 10대 경제 대국을 건설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며 “고인께서 남기신 가르침을 잊지 않고 끊임없이 혁신해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기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김 총재님의 별세는 큰어른을 잃어버렸다는 안타까움이 있다”며 “한국 현대 정치사에 길이 남을 풍운아였고 각박한 정치 현장의 로맨티스트였다”고 말했다. 

러시아를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문 대통령 명의의 조화를 보내 애도를 표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메시지에서 “한국 현대 정치사에 남긴 고인의 손때와 족적은 쉬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며 “시와 서, 화를 즐겼던 고인은 걸걸한 웃음으로 각박하고 살벌한 정치의 이면에 여백과 멋이라는 거름을 주었다”고 말했다. 

이어 윤 수석은 “고인의 존재감만큼이나 그의 빈자리는 더 커 보일 것이며 우리는 오래도록 아쉬워할 것”이라며 “삼가 조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 2015년 2월22일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서울 아산병원에 마련된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부인 故 박영옥 씨의 빈소를 조문하고 김 전 총리와 인사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SNS에서도 고인의 삶을 기억하고 애도를 표하는 글들이 잇따랐다.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대 한국 정치사를 주름잡았던 3김시대가 막을 내렸다”며 “그는 양김의 민주화 투쟁에 맞선 가해자이기도 양김과 손을 잡은 협력자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정 전 의원은 “굴곡진 그의 인생사가 굴곡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사이기도 하다”며 “그에 대한 서운함이 없지 않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애도했다.

정운현 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은 “그는 처삼촌 박정희와 함께 5.16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거머쥔 후 평생을 정치권 언저리를 맴돌았다”며 “우리 헌정사상 최다선인 9선 국회의원에다 국무총리 2회, 당 총재 등이 그것이다”이라고 행보를 지적했다. 

정 전 국장은 “그러나 그는 내내 권력 2인자에 그쳤는데 이는 그가 겸양해서가 아니라 그가 질긴 정치 목숨을 이어가는 전략이었다고 생각된다”면서 “평생을 양지에서만 살아온 그를 좋게 평가할 구석은 그리 많지 않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굳이 그의 공로를 하나 들자면 1997년 대선 때 DJP 연합으로 정권교체에 기여한 공로”라며 “그러나 이 역시 자신의 신념인 내각제 욕심 때문이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고 말했다. 

   
▲ 92세로 23일 오전 별세한 김종필 전 총리가 68년 당시 공화당을 탈당하고 모든 공·사직에서 사퇴 후 부산으로 내려가 칩거 중 극동호텔에서 구태회 의원과 바둑을 두고 있는 모습.<출처=운정재단 홈페이지, 뉴시스>

민일성 기자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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