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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슬픈 음식기행’.. 국가폭력 피해자 <인권을 먹다>

기사승인 2018.06.22  17:3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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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지금 여기에’ 변상철 사무국장 “국가폭력에 일조했던 어린시절.. 충격이 컸죠”

시민들이 촛불을 들어 부패한 권력을 끌어내렸다. ‘촛불혁명’ 과업을 완수할 새로운 정부를 세우고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집권당에 표를 몰아줌으로써 적폐세력에 ‘참패’를 안기며 촛불혁명 이후 새로운 국가의 모습을 시민들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다.

“옛날에는 택시를 타고 가다가 ‘빨갱이’ 소리가 나오면 화가 나서 중간에 내려버렸어요. 지금은 ‘빨갱이’ 소리가 나와도 그냥 참고 갑니다. 공존하며 살아가는 거죠. 세상이 바뀌기는 한 것 같습니다.”- 1979년 조작간첩 고문 피해자 김순자 씨

‘국민이 국가’임이 당연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그 국가에 의해 ‘간첩’ ‘빨갱이’로 몰렸던 국가폭력 피해자들은 여전히 자아가 무너지고, 가정이 해체되고, 공동체를 파괴당한 채 이 시대를 함께 살아내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발족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를 통해 조작간첩 고문 피해자들이 민‧형사 재심 기회를 얻고 ‘간첩아님’을 확인(?)받았지만 이들의 무너진 삶까지 구제받지는 못했다.

판결문에 기록되지 못한 국가폭력의 상처는 이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까.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지원하고 있는 단체, ‘지금 여기에’ 변상철 사무국장은 현재진행형인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상처를 음식이야기로 풀어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다. 24명의 사연이 최근 <인권을 먹다>란 책으로 묶여 출간됐다. 지난 19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지금 여기에’ 사무실 인근에서 변상철 사무국장을 만났다. 점심을 함께 먹으며 그가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맛본’ 인권에 대해 들어봤다.

다음은 변상철 사무국장과의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인권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지금여기에' 변상철 사무국장 <사진제공=지금여기에>

- <인권을 먹다>,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나요?

“국가폭력 피해자분들과 음식을 먹는 중에 상실한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됐어요. 헌법에서 이야기하는 ‘고문을 당하지 않을 권리’, ‘인신이 구속되지 않을 권리’가 침해된 사실들은 보고서에 남지만 그로인해 아내가 집을 나가고 아들이 자살한 사실들은 텍스트로 남지 않아요. 이 책에서는 가능한 ‘그래서 나는 전기면도기를 못 써’, ‘그래서 나는 뜨거운 국물이 있는 음식은 못 먹어’, ‘그래서 나는 짬뽕을 못 먹어’, ‘형광등을 그래서 못 갈아’ 등 법 테두리 밖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다루고 싶었어요.”

- 국가폭력이란 다소 무거운 주제를 음식이야기로 풀어서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간첩’ ‘고문’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사람들은 선뜻 책을 열려고 하지 않아요. 슬퍼서 눈물이 나는 이야기든 통쾌함을 주는 이야기든 재미있게 풀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왔어요. 그 첫 번째 시도가 <인권을 먹다>에요. 음식이라는 매개를 통해 국가폭력이나 분단 체제하 아픔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사람들이 좀 더 쉽게 다가왔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어요.”

“인권을 먹다.. 가장 슬픈 음식기행”

- 역사학자 한홍구 교수님의 추천사를 보니 ‘가장 슬픈 음식 기행’이라는 표현을 쓰셨더라고요. 피해자들과 밥을 먹는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피해자들이 밥을 먹자고 하는 건 ‘내가 이런 부탁을 했는데 잘 부탁해’라는 의미와 ‘내가 남들에게는 할 수 없는 얘기를 해줬으니까 당신은 이제 나랑 특별한 관계야’라고 하는 일종의 인증 의식이에요. 그 사람과 나와의 관계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진실규명을 위한 한 절차라고 할 수 있어요.”

- 책에는 24명의 사연이 소개 됐는데 그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나요?

“‘오주석 사건’이 기억에 남아요. 제가 중학교 때 ‘마이마이’를 사겠다고 중국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거든요. 그 때 찜찜한 배달지가 하나 있었어요. 주인아저씨가 ‘그곳에 배달 가면 초인종도 누르지 말고 그냥 내려놓고 와라’ ‘돈 안 받아와도 되니까 그냥 두고 와라’ 신신당부를 하더라고요. 여러 가지 음식을 시키는데 짬뽕 한 그릇은 꼭 안 빼고 시켰거든요. 나중에 알고 보니 거기가 춘천 안기부였더라고요. 오주석 씨는 그 곳에서 짬뽕 국물로 물고문을 받았어요. 그가 춘천 안기부에 끌려가 고문 받았던 시기와 제가 아르바이트를 했던 시기가 겹치는데 ‘내가 배달한 짬뽕이 고문 도구로 쓰였을 수 있다’는 생각에 충격을 받았어요. 당시에는 인식하지 못했지만 국가폭력에 일조했던 어린시절이 있었던거죠.”

- 책 서문에 ‘글 쓰는 시간은 상처를 치유하는 시간이었다’고 썼어요. 뭐가 가장 답답하고 상처가 됐나요?

“누가 유리창을 깼다고 쳐봐요. 내가 안 깼는데 내가 깼다고 억울하게 처벌받은 거잖아요. 나중에 내가 안 깬 게 밝혀져서 사과도 받았어요. 그런데 실제로 유리를 깬 사람은 사과도 하지 않고 멀쩡히 잘 살고 있는 거예요. 그게 너무 억울한 거죠.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죄상을 다 밝혀놨는데 국가는 손을 놓고 있어요. 심지어 고문한 수사관들이 받은 훈장도 취소를 안 하고 있어요.”

   
   
▲ 국가폭력 피해자들과 이들을 지원하는 단체 '지금 여기에', 이들이 함께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지금여기에>

“후배 판사들의 과거사 사과 물거품 됐다.. 양승태 재판거래”

- 1986년 오재선 씨 사건의 경우, 주심판사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었어요. 재판거래 의혹이 불거진 지금 상황을 어떻게 보시나요?

“양승태가 대법원장 했을 때 오재선 씨 심정이 어땠겠어요. ‘저런 놈이 어떻게 대법원장을 하느냐’고 분노했죠. 그런 사람들이 계속 법관으로 있다면 피해자들이 가지는 상실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죠.

사법부가 신뢰를 회복하려면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들 거예요. 과거사 재심 재판에서 현역 판사들의 끊임없는 사과들이 있어 왔어요. 법관으로서 사법부의 신뢰, 정의를 회복하려고 굉장히 많은 재판관들이 노력했어요. 현장에서 90도로 인사하면서 선배 판사들의 과오를 사과했죠. 근데 그게 다 소용이 없어진 거예요. 지난 십수년 간의 현장의 노력들이 양승태라는 한 인간의 잘못된 행동으로 다 뒤집어진 거죠. 이 불신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과거사 활동을 통한 지난 십수년 간의 활동 이상의 시간이 더 들어갈 거라고 봐요.”

- 책에 소개된 국가폭력 피해자들 모두 우리 사회 가장 약자들이에요.

“그래서 ‘인권외전’이란 제목도 생각해봤어요. 국가폭력 피해자들은 사회 안전망 테두리 밖에 존재하는 사람들이에요. 국가가 그런 사람들만 노린 거죠.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 넘지 말라는 어로저지선을 넘어 조기떼를 쫓아가다 이 테두리를 벗어나게 된 거에요. 그런데 그때 우리나라 해경과 해군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이들이 넘어가지 않도록 지도했어야 할 어업지도선이나 해경과 해군은 없었어요. 다 잡혀서 북으로 끌려가는 동안 아무도 손을 못 썼어요. 국가가 그 책임을 회피하고 피해 당사자들한테 씌운 거죠. 세월호참사와 똑같아요. 적극적으로 구조하지 못한 책임에 대해선 죄를 묻지 않았잖아요.”

- 국가폭력 문제에 있어서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뭐라고 보세요?

“항시적으로 이 피해들을 계속 확인하고 밝혀내는 진실화해위원회 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재심을 통해 무죄 받은 사건들에 대한 마무리 작업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4.3이나 5.18 희생자들에 대해 대통령이 사과했지만 일베 등 반사회적 집단들이 ‘빨갱이 폭동’이라는 말을 다시 하는 순간 아물었던 상처가 뜯어지고 상처가 더 깊어져요. 이를 막기 위해서는 이런 말이 나오지 않도록 막는 기구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봐요. 트라우마 치유라고 하는 건 임상치료나 약물로 끝나는 게 아니에요. 사회 구성원 모두가 힘을 합쳐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해요.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는다고 해도 망가진 삶은 회복되지 않아요.”

“고문 가해자 훈포장 회수하고 구상권 청구해야”

- 제대로 마무리를 하려면 국가가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까요?

“저는 가능하면 고문 가해자들이 받았던 훈포장이나 포상금 정도는 회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세금으로 지불한 형사배상금도 이 사람들에게 구상권을 청구해서 비용정도는 회수하는 액션이라도 보여줘야 피해자들의 마음이 풀어지지 않을까요? 구상권 청구는 단순히 비용회수 차원이 아니라, 그런 범죄들을 다시 일으켰을 때 ‘너희들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이 정도야’라고 하는 상징적인 행위에요. 사례가 만들어져야 이런 일들이 재발하지 않아요.”

- 촛불혁명 이후, 더 이상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생겨나지 않을거라고 보세요?

“김대중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까지 이미 우리는 경험을 해봤어요. 우리는 아무런 제약 없이 떠들 수 있을 만큼 떠들었고, 반대 의견을 이야기해도 공격받지 않았어요. 그 시절에는 민간인이 국정원에 들어가서 조사도 해봤던 시절이었어요. 하지만 ‘설마 이런 시대를 다시 뺏기겠어?’, ‘인권이 다시 후퇴하겠어?’ 라고 이야기 했던 게 무색할 만큼 지난 10년이 후퇴했잖아요. 이제 중요한 것은 그걸 어떻게 지속가능하게 유지할 것인가 하는 거예요. 빼앗긴 걸 다시 찾아온 건데 그걸 어떻게 하면 다시 빼앗기지 않을지 고민해야 해요.”

   
▲ 변상철 사무국장과 지금여기에 식구들 <사진제공=지금여기에>

- ‘지금 여기에’, 앞으로 어떻게 활동해나갈 계획인가요?

“‘지금 여기에’를 만들면서 국가폭력 문제가 잊혀지는 문제가 되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제일 컸어요. 잊혀지지 않기 위해서는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매개가 필요하다는 고민이 있었어요. 제가 하는 활동들이 신선하거나 새로운 활동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20대 감수성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고민 끝에 젊은 친구들과 협력하는 ‘지금 여기에’를 만들었죠. ‘판소리 창극’ ‘보드게임’ ‘사진치유 모임’들이 그런 고민들을 통해 만들어졌어요. 젊은 세대의 접근을 높이기 위해서 교육적 차원에서 아이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활동들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김미란 기자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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