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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궤멸’엔 보수언론 책임도 크다

기사승인 2018.06.15  08:4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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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수첩] 많은 언론과 전문가들, 왜 보수언론 책임은 거론하지 않을까

“6·13 지방선거 결과를 가로지르는 열쇳말은 ‘보수 궤멸’이다. 대한민국 보수 정당의 적통을 잇는다는 자유한국당은 전국 광역단체장 17곳 가운데 대구·경북 2곳에서만 간신히 당선자를 낸 ‘티케이 정당’으로 쪼그라들었다. 박정희 신화와 냉전·반공주의, 지역주의에 기대어 연명해온 한국 보수세력에 대해 국민들이 퇴장 명령을 내린 셈이다.” 

오늘자(15일) 한겨레 8면에 실린 기사 가운데 일부입니다. 지방선거와 대선이 끝나면 언론은 선거결과를 분석하는 기사를 쏟아냅니다. 보통 ‘다양한 관점’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번 6·13 지방선거 결과를 분석하는 언론의 ‘논조’는 거의 비슷합니다. ‘보수의 궤멸’ - 진보·보수적 성향과 상관없이 상당수 언론이 내리고 있는 결론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보수의 궤멸’을 얘기하면서도 많은 언론과 전문가들이 보수언론의 책임론을 거론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 1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홍준표 대표와 김성태 원내대표 등 당직자들이 6.13 전국동시지방선거 출구조사 발표에서 자유한국당이 참패로 발표되자 침통한 표정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보수의 궤멸, 자유한국당만의 책임인가 – 보수언론의 책임은 없나 

오늘자(15일) 동아일보만 봐도 그렇습니다. 동아는 사설에서 현재의 보수 궤멸이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간 보수 진영을 이끌 차세대 인물을 키워내지 못한 데서 증폭됐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당권을 노려온 중진 의원들로 당 지도부를 교체하는 수준의 수습으로는 보수 야당에 더는 희망이 없다. 새 얼굴을 중심으로 건전한 보수의 토양을 재건할 때가 됐다”고 강조합니다. 

일견 타당한 지적이긴 합니다만 이 지적은 동아일보에게도 해당됩니다. ‘건전한 보수의 토양 재건’에 ‘보수언론’ 동아일보 역시 별다르게 기여한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박정희 신화와 냉전·반공주의, 지역주의에 기대어 연명해온 한국 보수세력’에게 국민들이 퇴장 명령을 내리기 전에 보수언론이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정당에 쓴소리 제대로 한 적이 있었던가요? 최근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은 물론 홍준표 대표의 막말 파문 등이 빚어지는 와중에 보수언론이 보인 행태는 자유한국당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됐을 때 자유한국당에서 사과하거나 책임지는 사람도 없었지만, ‘이명박근혜 정권’ 내내 그들과 함께 승승장구했던 보수언론 역시 최소한의 사과나 책임지는 모습은 없었습니다. 홍준표 대표가 색깔론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위장평화쇼”라고 폄하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중앙일보를 비롯한 일부 종편이 비판에 가담하긴 했지만, 보수언론 역시 자유한국당의 ‘보수혁신’을 주문하는데 인색했습니다. 

오늘자(15일) 중앙일보가 사설에서 지적한 “그동안 야당의 유일한 전략이란 그저 대통령과 각을 세워 보수 표심을 끌어모으겠다는 손쉬운 셈법뿐”이었다는 지적에서 한국의 보수언론, 이른바 조중동과 종편(JTBC 제외) 역시 자유롭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조선일보 “여권의 대승, 북핵 이벤트에 큰 도움을 받았을 것”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조선일보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편입니다. 6·13 지방선거 이후 기사와 사설 등을 통해 ‘보수의 혁신’을 적극적으로 주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수신문 역시 ‘보수궤멸’에 상당한 책임 있다고 생각하는 저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의 자기반성이 없는 게 아쉽긴 하지만, 어쨌든 다음과 같은 지적들이 기사와 사설에서 등장하는 것은 주목할만 합니다. 

“보수 재건은 처절한 반성과 자기희생이 출발점이다. 책임과 희생이야말로 보수의 최대 가치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과거의 책임과 잘못된 체질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권력자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부패한 기득권에 집착하는 박근혜식 보수는 이미 국민들로부터 탄핵당했다. 반성과 변신의 노력이 없는 기득권 세력은 가려내야 한다. 그 자리에 건전한 보수 가치관을 지닌 젊은 인재들을 영입해 당에 새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되살리고 명실상부한 정통 야당으로 거듭날 수 있다.” (중앙일보 6월15일자 사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문재인 정부 출범 1년 남짓하도록 보수 혁신의 비전도, 위기를 극복할 새 얼굴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무엇보다 대선 패장이 당의 전면에 서며 보수의 활로를 도모할 새 인물의 출현을 가로막았다. 결과적으로 이번 선거도 ‘보수 심판’이라는 탄핵 직후 대선 프레임의 연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동아일보 6월15일자 사설) 

하지만 이런 흐름과 동떨어진 채 계속해서 ‘보수궤멸’을 재촉하는 사설을 싣는 언론이 있습니다. 바로 조선일보입니다. 조선일보는 어제(14일) 사설에서 이번 지방선거 결과에 충격(?)을 받았는지 ‘보수의 반성과 혁신’을 주문하기보다는 매우 거친 표현과 단어로 문재인 정부를 ‘비난’했습니다.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최근 사법 권력까지도 진보·좌파 성향으로 짜였다. 언론의 정부 비판 기능도 거의 실종된 상황이다. 한국은 완벽하게 진보·좌파 쪽이 장악하게 됐다 … 문재인 정부가 정말 이런 성적표를 받을 정도로 국정을 잘 운영했는지는 의문이다. 지난 1년간 실제 국민들 삶은 하나도 나아진 것이 없다 … 갈라진 국민을 통합하겠다더니 적폐 청산이라며 1년 내내 보복만 했다. 지난 정권 관계자들은 물론 직업 공무원들까지 구속했다. 전 정권의 흠만 잡을 수 있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았다 … 여권의 대승은 북핵 이벤트에 큰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화려한 쇼의 막후에선 북한 핵 보유가 굳어질 수 있는 위험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조선일보 6월14일자 사설) 

오락가락하는 조선일보…어제는 ‘전 정권 수사’ ‘정상회담 이벤트’ 때문에 지방선거 승리
오늘은 “대통령 지지율과 미·북 회담만으로 이런 궤멸적 패배를 설명할 수 없다” 

이렇게 문재인 정부 비난에 사설을 상당 부분을 할애한 조선일보는 “선거에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전 정권에 대한 끝없는 검찰 수사로 지난 정부에 대한 국민 분노가 계속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냅니다. 그러면서 야당의 책임을 한 마디 덧붙입니다. 

“거기에 더해 지리멸렬한 데다 분열까지 된 야당도 여당 대승의 일등 공신이 됐다. 자유한국당은 이번 선거를 통해 대안다운 대안도, 새로운 인물 한 사람도 보여주지 못했다. 정부 실정에 비판적인 유권자들이 기권을 택할 지경이었다. 이런 야당으론 정권이 폭주하더라도 막을 수가 없다.” 

하지만 조선일보 역시 이번 선거결과를 ‘이런 식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걸 오늘(15일)은 깨달은 것 같습니다. 어제(14일) 사설에서 문재인 정부 비난에 상당 부분 할애한 것과 달리 오늘자 사설에선 이렇게 지적합니다. 

“한국당은 17개 시·도 지사 중 대구·경북을 빼고 한 군데도 이기지 못했다. 부산·울산·경남도 졌다. 진 적이 없던 서울 강남구를 포함해 서울 25개 구 중 24곳을 여당에 내줬다. 박정희 전 대통령 고향인 경북 구미시장도 민주당이 차지했다. 대통령 지지율과 미·북 회담만으로 이런 궤멸적 패배를 설명할 수 없다.” (조선일보 6월15일자 사설)

재밌는 건, 조선일보가 사설에서 다음과 같은 부분을 언급했다는 점입니다. 

“1년 내내 이어진 검찰 수사의 영향이 크지만 야당도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지 못했다. 친박, 비박 싸움이 없어진 자리에 친홍, 반홍 싸움이 이어졌다. 북핵 문제는 급변하는데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비판과 대안이 아니라 구태의연한 정쟁식 대응만 거듭했다. 언행은 국민의 고개를 돌리게 하였다. 엉뚱한 막말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기만 했다. 인재를 삼고초려해도 쉽지 않았을 이번 선거였지만 자기 사람 심기에만 열중했다.” 

사실 “친박, 비박 싸움이 없어진 자리에 친홍, 반홍 싸움이 이어졌을” 때 별다른 쓴소리를 하지 않았던 조선일보가 보수의 궤멸 이후 뒤늦게(?) 이런 얘기를 하는 것도 우습지만, “북핵 문제는 급변하는데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비판과 대안이 아니라 구태의연한 정쟁식 대응만 거듭”했다는 주장을 과연 조선일보가 할 자격이 있는가 – 저는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구태의연한 ‘색깔론’과 시대착오적인 이데올로기 공세를 펴는 사설과 칼럼, 기사가 오늘자(15일) 지면에서 곳곳에 등장하는 신문이 조선일보이기 때문입니다. 

조선일보에는 여전히 ‘색깔론’ 사설과 칼럼이 버젓이 실리고 있다

“지금 좌파 교육감들이 기세를 떨치는 교육계는 치열한 세계 경쟁을 돌파해나갈 인적 자원의 양성에는 관심이 없다 … 한국 교육계는 완전히 친전교조 세력에 의해 장악됐고 선거에 의해 구조적으로 고착되고 있다. 이게 한국 교육의 미래다.” (조선일보 6월15일자 사설) 

“북핵을 없애 한국의 안보를 지키고자 시작한 협상이, 북핵 폐기는 모호하고 불확실한 지대로 들어가고 한·미 동맹은 명백히 약화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지금 모두가 북한 체제 안전을 걱정하는데 정작 한국민 안위는 누가 대변하고 있나.” (조선일보 6월15일자 사설) 

“보수 정당에 젊은 유권자의 지지를 확보하려는 전략이 아예 없다는 혹평도 있었다. 대전에 거주하는 30대 공무원 정모씨는 ‘젊은 사람 중에도 북핵 이슈에 민감하고 일방적인 친(親)노동 정책에 비판적인 사람이 많은데도 한국당은 이런 사람들을 전혀 끌어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정현수씨는 ‘기업인들이 모이면 정부가 원전 철회, 주 52시간 도입, 최저임금 인상, 교육 정책 등에서 수차례 아마추어적인 모습을 보이는데도 한국당이 예리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 6월15일자 4면) 

   
   
   
▲ <이미지 출처=조선일보 홈페이지 캡처>

오늘자(15일)에 실린 조선일보 기사와 사설 가운데 일부를 추렸습니다. 모두가 ‘보수의 혁신’을 말하는 지금, 심지어 조선일보조차 ‘보수의 궤멸과 재건’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여전히 조선일보 지면엔 ‘이런 사설과 기사’가 실립니다. 

한겨레가 사설(15일)에서 지적했듯이 “보수 정당의 재탄생을 위해선 시대 변화에 걸맞은 패러다임, 새로운 가치와 노선을 정립하는 게 무엇보다 시급”함에도 여전히 자유한국당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조선일보는 ‘시대에 동떨어진 패러다임과 구시대 보수의 가치와 노선’을 강조하는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조선일보를 비롯한 한국 보수언론의 혁신없이 보수정당 혁신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유권자들과 독자들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한국의 ‘보수진영’은 여전히 낡은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조선일보입니다. 위기의 원인은 자유한국당이 아니라 조선일보라는 얘기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자(15일) 한겨레 사설을 간단히 소개하면서 글을 마칠까 합니다. 

“유권자는 급속히 변하는데 보수 정치는 따라잡지를 못한다. 한반도 대전환의 시대에 낡은 냉전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유권자의 버림을 받을 처지에 놓인 게 보수의 현실이다. 사사건건 반대만 하면서 문재인 정부 발목잡기에만 혈안이 돼 있다. 국민 눈높이에 맞추지 않고 자기만의 정치에 매몰돼 있는 것이다. 시대 변화를 외면한 정당이 몰락하는 건 보수든 진보든 다르지 않다.”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media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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