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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원맨쇼와 김정은의 깜짝쇼, 그리고 네고시에이터 문재인

기사승인 2018.06.13  17: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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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성태의 와이드뷰] 여기까지 온 것도 ‘역사적인’ 순간 그 자체, 신뢰 보낼 때

“하나만 말 하겠다. 트럼프 엿 먹어라!”

지난 10일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한 뮤직홀에서 열린 72회 토니상 시상식. 명배우 로버트 드니로가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무대를 소개하기 위해 무대에 올랐다. 난데없이 트럼프 미 대통령을 연거푸 욕한 드니로의 돌발행동에 시상식울 중계한 미 CBS는 급하게 무음처리를 하는 해프닝을 연출했다. 물론 이 소식은 소셜미디어를 타고 일파만파 퍼졌다. 

이에 대해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반박에 나섰다. 복싱영화의 명작인 <분노의 주먹> 같은 영화를 찍으면서 “복서들에게 머리를 너무 많이 맞아”서라며 “아직 펀치 드렁크 상태 같다. 깨어나라, 펀치!”라고 맞대응을 한 것이다. 미국 리버럴들의 여전한 트럼프 비난의 현재를 보여주는 에피소드이자 트럼프의 여전한 트위터 사랑을 나타내는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트럼프를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을 보며 든 단상은 이러했다. 

“도널드의 이분법적 세계관에서 세상은 포식자와 피식자로 나뉩니다. 흑 아니면 백이에요. 포식자가 되지 못하면 희생된다는 거죠. 그의 세계관이요? 무가치하죠. 어떤 가치도 없어요. 저는 그를 소시오패스라고 생각했어요. 양심도 없고, 옳고 그름의 차이를 알지 못해요.”

트럼프의 베스트셀러 <거래의 기술>을 직접 썼다는 ‘고스트라이터’는 트럼프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에 출연, 트럼프의 세계관을 이렇게 정의했다. 책을 쓰는 동안 트럼프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이 대필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아주 원시적이고 이분법적인 세계관의 소유자다. 젊은 시절 트럼프 역시 본능적으로 “실패보다는 성공”에 끌린다고 공공연하게 밝히면서 아래와 같이 말하기도 했다.  

“전 (세상이) 기본적으로 게임이라고 생각해요. 전 게임을 하려고 온 것뿐이고요. 게임에 서툰 사람들도 분명 있어요. 세상은 좋은 본능을 가진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나뉘죠.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은 주로 경쟁심이 강하고 의욕적이고 이기고자 하는 본능이 있어요.“

그로부터 40여 년 뒤 세계 최고의 권력을 지닌 미국의 대통령이 된 트럼프가 역시나 인생의 첫 번째 ‘화양연화’를 만난 북한 김정일 국무위원장과 ‘세기의 담판’을 지었다. 공히 아버지로부터 ‘위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두 사람. 

그들은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가운데 싱가포르에서 만났고, ‘홍보의 달인’인 트럼프는 여지없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래서 다시 고심해 봤다. 김정은의 말을 빌리자면 “공상 과학 영화”처럼 느껴지는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을 바라보며, 트럼프라는 인간을 재고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러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려 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트럼프의 원맨쇼가 놀라운 변화인 이유 

근본적인 질문은 이거다. 과연 미디어를 통해 스스로를 수십 년간 반복적으로 ‘거래의 달인’이라 포장해온 트럼프가 아무런 이득 없이 북한과의 ‘빅딜’에 응하고 합의서에 사인을 했을까.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작년까지만 해도 ‘핵 버튼’ 운운하며 적대감을 표출해왔던 북한과의, 김정은 위원장의 거래에 어떻게 임했을까. 과연 득보다 실이 많았다면 합의서에 서명을 했을까. 

트럼프의 눈에 띄는 철학 중 또 하나는 “누가 날 엿 먹이면 반드시 배로 갚아준다“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은, 단순하지만 즉물적이고 동물적인 본능의 소유자인 트럼프가 변한 것은 무엇이고, 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그 답은 북미정상회담 결과 기자회견 장면에서 읽어낼 수 있다. 그는 한참이나 어린, 그리고 격이 한참이나 떨어진다고 생각할지 모를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기자회견에 나서지 않았다. 기자들의 질문 포화가 쏟아진 가운데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쇼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실제로 트럼프는 한국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쇼맨십’의 달인이자, 방송 진행자 출신이며,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을 거의 직업처럼 삼아온 셀러브리티형 대통령이다. 기대를 모았던 남북미 정상회담은커녕 김정은과의 포토타임은 짧게 끝낸 채 이목이 집중됐던 기자회견을 독차지한 셈이 됐다. 세계의 이목은 물론이요 정상회담에서 취할 수 있는 개인적인 실리는 충분히 챙긴 셈이 됐다. 부족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인 합의문과 달리 기자회견 내용을 그래서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향후 신뢰구축은 물론 트럼프의 평양 방문과 김정은의 워싱턴 방문도 언급했다. 북한 인권문제는 물론 일본인 납북자, 탈북자 관련 문제도 얘기를 나눴다고 했다. 비용문제를 들어 한미연합훈련 중단에 대해서도 명확한 입장을 냈다.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서는 “세계를 더 안전하게 만들고 싶은 것“에 공감하며 “지금 김 위원장과 같이 서 있는 것만으로도 세계 평화를 유지한다면 기꺼이 하겠다“라는 말로 운명공동체임을 과시했다. 이 정도면 놀랍지 아니한가. 첫 술에 배부를 필요가 꼭 있을까.  

의심 섞인 질문과 시선이 쏟아졌다.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라는 표현이 합의문에 담기지 않은 것에 대해 말들이 무성한 가운데 무려 40여 개 가까운 질문이 쏟아진 트럼프의 원맨쇼에서 주목한 것은 북과 김정을 위원장을 향한 태도다. 트럼프의 입에서 북한을, 김정은을 옹호하고 변호하는 듯한 그리고 남북 관계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듯한 말들이 터져 나온 것이다. 실로 놀라운 광경 아닌가.   

“다만 여러분도 북한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한국의 서울은 DMZ 옆에 위치해 있고, 아주 많은 인구가 살고 있다. 군사적인 충돌이 발생한다면 수백, 수천만 명이 희생될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인 서울이 국경 근처에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기존의 미국의 전통적인 매파나 민주당 지도부와는 또 달리, 평생 이타는커녕 트럼프라는 브랜드와 성공만을 좇았던 것으로 유명한 트럼프 대통령. 그런 그가 “오늘 (남북) 합의는 우연한 것이 아니고 몇 개월에 걸친 노력의 결과”라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이고, “(북한 문제와 관련) 가장 위대한 승자가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을 했다.   

그러한 행동이 세계의 이목과 노벨상 수상이 됐든, 미국 중간선거에서의 승리가 됐든, 지금 상황에서 우리에게는 크게 중요치 않다.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우파도, 좌파도 아닌, 그저 포퓰리스트에 가까운 트럼프였지 않은가.  

“역사는 행동하고 도전하는 사람들의 기록입니다” 

그 와중에 앞서 ‘전쟁에서 평화로’를 언급했던,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13일 담화는 실로 감동적이었다. “6.12 센토사 합의는 지구상의 마지막 냉전을 해체한 세계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면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에게 공을 돌리는 겸손도 잊지 않았다. 

“이번 합의를 바탕으로, 우리는 새로운 길을 갈 것입니다. 전쟁과 갈등의 어두운 시간을 뒤로하고, 평화와 협력의 새 역사를 써갈 것입니다. 그 길에 북한과 동행할 것입니다(중략). 이제 시작이고 앞으로도 숱한 어려움이 있겠지만 다시는 뒤돌아가지 않을 것이며 이 담대한 여정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역사는 행동하고 도전하는 사람들의 기록입니다.” 

   
▲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오전 청와대 세종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북미정상회담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30대부터 종종 ‘대통령의 꿈’을 언급했었고, 실제 2000년대 들어 ‘대통령 수업’에 매진했던, 세상에 둘 도 없는 ‘관심종자’이자 불과 1년 전만 해도 ‘핵 버튼’ 운운했던 그가 이제 ‘한반도 평화’의 중요성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있다. 그리고 그를 위해 북한의 지도자와 비핵화 의지를 함께 천명하고 있다. 

트럼프는 원맨쇼를 끝낸 뒤 미국으로 향하는 에어포스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를 나눴다고 한다. 이틀에 걸친 연속 통화다. 공이 우리에게로, 북으로 넘어왔다 라는 핑퐁 게임이라기보다 북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대전제를 남북미 정상이 큰 틀에서 공감한다는 인상이 더 커 보인다.  

이에 맞춰 북의 변화도 눈여겨 볼만 하다. 북미정상회담 전날 밤 싱가포르 인사들과 ‘셀카‘를 찍고, 식물원 등을 깜짝 방문한 김정은의 행보는 덤이다. 김정은의 행보를 자랑스럽게 보도하는 북한 매체들의 변화 역시 주목할 만하다. 무엇보다 과거 ‘악의 축‘으로 낙인찍었던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해외로 날아간 첫 번째 북한 지도자라는 타이틀은 김정은에게 있어 어떤 의미일지 되새기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 북미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11일 오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 가든스바이더베이를 방문, 비비안 발라크리쉬난(왼쪽) 싱가폴 외무장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비비안 발라크리쉬난 싱가폴 외무장관 페이스북 캡쳐>

그래야만 김정은의 한밤의 깜짝쇼를 더 쉽게 납득할 수 있고. 비핵화와 핵 폐기를 약속하는 가운데 개방개혁과 체제개혁을 암시하는 듯한 김정은의 행보야말로 김정은 위원장과 현 북한 지도부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필요로 하는 필요조건일 수도 있고.  

아무리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고는 하지만, 참으로 드라마틱하지 않은가. 그렇게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못해낸 일을 1984년생이자 이제 30대 중반인 김정은 위원장이 해내고 있다. 뼛속까지 장사꾼인 트럼프와의 현실적인 거래를 통해서 말이다. 한반도의 운명을 그 트럼프의 게임과 함께 해야 한다니, 이 역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고.  

그럼에도, 여기까지 온 것도 그야말로 ‘역사적인’ 순간 그 자체다. 그러니, 의심은 품되 회의감은 거둘 때다. 부화뇌동이나 기존 적대감도 버릴 때다. 그저 제 이익만 쫓아온 장사꾼 트럼프를, 새 세대를 자처하는 김정은을, 그리고 우리의 네고시에이터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에 신뢰를 보낼 때다. 

하성태 기자

하성태 기자 woody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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