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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 사설에는 ‘트럼프 비판’이 없다

기사승인 2018.05.25  10: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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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평] ‘북미 정상회담 취소’ 언론 반응을 살펴봤습니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한 직후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했습니다. 외교적으로는 물론 국제관례에도 어긋나는 대단히 무례한 행동입니다. 한국 언론은 이번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오늘자(25일) 사설을 한번 살펴봤습니다. 먼저 경향신문입니다. 

“미국은 6월12일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했다 … 이는 국제관례에 어긋나는 것은 물론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처사다 … 북·미처럼 신뢰가 없는 국가 사이에서는 신뢰를 쌓아가며 협상하는 길밖에 없다. 어느 한쪽이 구체적인 조치로 신뢰를 쌓은 뒤 그것을 바탕으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록 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상대가 수용하기 어려운 조건을 내세워 압박하는 것은 회담의 모멘텀을 약화시키게 된다. 북한의 핵실험장 폐기 조치에 미국도 선의를 보여야 한다.” (경향 사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보낸 편지를 통해 예정된 역사적 회담은 “적절치 않다(inappropriate)”라면서 이를 취소한다고 통보한 가운데 외신들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회담 취소를 속보로 전하고 있다. <사진=CNN 캡쳐, 뉴시스>

경향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처사…트럼프 지도력도 훼손” 
한겨레 “놀랍고 어처구니없는 일…미국은 지금이라도 북한과 대면해야” 

경향신문은 ‘북미 정상회담’ 취소를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며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했습니다. “북한이 이전에도 여러 차례 무조건적 선제조치를 취해온” 반면 “미 고위 인사들은 북한이 거부하는 리비아식 비핵화 모델을 거론하며 북한을 자극해왔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최근 북한의 반응에 대해 경향은 “김정은 위원장의 직접 발언이 아닐뿐더러 판을 깨자는 것도 아님은 누가 봐도 분명하다. 이를 이유로 회담을 취소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도력도 훼손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한겨레 역시 비슷한 입장입니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참으로 놀랍고 어처구니없는 일”이라면서 “북한은 이날 낮 함경북도 풍계리의 핵실험장을 공개적으로 폐기했는데, 미국이 정상회담 취소로 응답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제라도 미국은 정상회담 취소를 재고하고,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하길 바란다”고 당부했습니다. 

특히 한겨레는 “미국의 체제 안전보장 방안이 명시적으로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한 것은 매우 의미있는 결단”이라면서 “미국은 이제라도 북한과 대면해, 정상회담 취소를 불러온 쟁점들을 정리하는 게 옳다. 북·미는 한편으로는 자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더 적극적으로 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조중동 사설에 없는 것… ‘트럼프 대통령’ 비판 
조선일보 “북의 이상행동, 도저히 핵 포기를 결단한 것으로 볼 수 없다” 

경향과 한겨레가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 비판에 방점을 찍었다면 이른바 ‘조중동’의 무게중심은 다릅니다. 특히 조선일보는 일방적으로 회담을 취소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조선일보는 오늘자 사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급작스럽게 정상회담을 열지 않기로 결심한 배경이 무엇인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면서 “북한이 중요한 협상을 앞두고 상대방을 막말로 비난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이런 북한의 행태에 익숙지 않은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모욕적이라고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조선일보는 “김정은이 깨끗하게 핵을 버리고 남북 공영의 길로 나오기를 바랄 뿐”이라면서 “그렇지 않으면 더 강력한 대북 제재와 미국의 군사 압박밖에 없다. 최근 보인 북의 이상행동들은 도저히 핵 포기를 결단한 것으로 볼 수가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조선일보는 그동안 북한이 여러 선제적 조치를 취한 것과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한 것은 보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북한에 풍계리 외에 다른 핵실험장 적당한 후보지가 없는 상태에서 핵실험장을 폐기한 것 - 비핵화를 위한 선제적 조치로 평가할 수 있음에도 조선은 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면서 “김정은이 깨끗하게 핵을 버리고 남북 공영의 길로 나오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합니다. “최근 보인 북의 이상행동들은 도저히 핵 포기를 결단한 것으로 볼 수가 없었다”고 주장합니다. 트럼프 행정부 고위 관료들이 보인 이상행동과 거친 말들은 조선일보 ‘레이더’에는 잡히지 않은 모양입니다. 

동아 “회담 취소의 주된 원인은 북한이 제공”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보여주기 이벤트”

동아일보는 한술 더 뜨는 분위기입니다. 동아는 사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전격적인 회담 취소의 주된 원인은 갑작스레 남북 고위급 회담을 무산시키고 한미 양국을 신랄하게 비난하고 나선 북한이 제공했다”면서 “더 근본적으로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두 차례 김정은 면담에서 북한이 비핵화 시그널을 보내놓고도 그 후 그 진정성을 담보할 행동을 전혀 보이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조선일보조차 “트럼프 대통령이 급작스럽게 정상회담을 열지 않기로 결심한 배경이 무엇인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며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는데, 동아는 ‘북한 때문’이라고 단정하고 나섰습니다. 동아는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에 대해서도 “비핵화 의지 표명 이후 첫 실행 조치인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는 북한의 약속과 달리 외부 전문가는 배제된 채 보여주기식 이벤트로 진행됐다”고 폄하했습니다. 

그러면서 동아는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회담의 재추진 가능성을 분명하게 열어놓았다”면서 “이제 김정은이 더 이상 벼랑 끝 전술에 기대지 말고 새로운 발상으로 미래를 위해 결단을 해야 할 시기가 됐다”고 주장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열린 지도자’인 반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보여주기 이벤트나 하고 벼랑 끝 전술’이나 벌이는 지도자인 것처럼 언급했습니다. 동아일보 역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없습니다. 

   
▲ 24일 북한 핵무기연구소 관계자들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위한 폭파작업을 했다. 풍계리 핵실험 관리 지휘소시설 폭파순간 목조 건물들이 폭파 되며 산산이 부숴지고 있다. 이날 관리 지휘소시설 7개동을 폭파했다. 북한 핵무기연구소 관계자들은 '4번갱도는 가장 강력한 핵실험을 위해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중앙 “워싱턴과 평양의 강경파들, 상황을 우려스럽게 만들었다” 비판 

중앙일보는 조선·동아와는 ‘궤’를 달리하는 사설을 실었습니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버튼을 누른 것은 말뿐이던 비핵화 의지를 가시화한 첫 조치라는 점에서 평가할만했다”고 긍정 평가한 대목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중앙 역시 북한에 대한 이런 저런 주문을 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에 대한 비판이 없다는 점에선 조선·동아와 비슷합니다. 

중앙은 사설에서 “근래 워싱턴과 평양의 강경파들이 판을 깨려는 듯한 목소리까지 여과 없이 쏟아내면서 상황을 우려스럽게 만들어온 게 사실”이라면서 “강경 발언은 속성상 꼬리를 물게 마련이고, 자칫 관리에 실패하면 상황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고 지적했습니다. 

중앙은 “세기의 협상을 앞두고 어느 정도 기싸움이 있을 순 있지만 결과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에겐 통하지 않았고, 결국은 비핵화 국면에서 가장 큰 위기를 초래하고 말았다”면서 “정부는 막판 중재에 나서야 하며, 북한도 더 이상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 식으로 자극적인 언동을 쏟아내서는 곤란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물론 이번 사안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의 행태는 ‘외교적 결례’에 해당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최소한 언급을 해야 하는 게 언론의 온당한 태도 아닐까요? 하지만 조중동에는 ‘트럼프 비판’이 없습니다. 조선일보는 이 와중에도 ‘한미 동맹’을 외치고 있습니다. 조선 시대 사대주의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라면 지나친 걸까요?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media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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