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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일베’가 아니라 ‘우리 안의 관행’입니다

기사승인 2018.05.16  08:2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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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수첩] 유경근 위원장이 아니라 MBC는 직접 뉴스 통해 ‘입장’ 밝혀야

“엊그제 MBC에 가서 조사 결과를 들었어요. 기가 막힌 게, 결국 잘못한 사람이 없어요. 그게 결론이에요. 근데 우린 또 죽었어요. 책임 지는 사람은 여전히 아무도 없고, 세월호 때처럼 여전히 사람들은 죽어나가고 있어요.” 

유경근 4·16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어제(15일) ‘언론에 의한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의 2차 피해 증언대회’에 참석해 한 발언입니다. MBC 예능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발생한 ‘세월호 영상파문’과 관련해 자신이 MBC로부터 ‘들은’ 조사 결과를 언급했습니다. 경향신문이 보도한 내용을 간단히 추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최근 MBC에서 5시간에 걸쳐 1차 조사 결과를 설명 들은 유 위원장에 따르면 제작진 중 누구도 세월호 피해자들을 모욕하려는 고의를 갖고 해당 화면을 사용하지 않았다. 통상적인 제작 절차에 따라 프로그램이 만들어졌고, 문제가 된 장면을 거르지 못한 것은 단순 실수라는 것이다. 연출과 조연출 등 해당 프로를 제작한 PD들도 ‘MBC 정상화 파업’에 적극 참여하는 등 사내 평판도 나쁘지 않다고 한다. MBC 안에 ‘일베’ 성향의 직원이 여전히 남아 방송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세간의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는 얘기다.” 

   
▲ <이미지출처=MBC '전지적 참견 시점' 방송 화면 캡쳐>

‘전지적 참견시점’ 파문…여전히 MBC 뉴스는 ‘침묵’하고 있다 

저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MBC는 여전히 ‘전지적 참견시점’ 파문과 관련한 진상을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전하지 않고 있습니다. ‘1차 조사결과’에 대한 설명을 유경근 위원장에게도 해야 하지만 시청자들도 관련 내용을 ‘알아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MBC뉴스를 통해서 말이죠. 

하지만 MBC는 ‘전지적 참견시점’ 파문을 뉴스를 통해 보도할 생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일부 언론이 ‘추정과 앞서 나간 보도’로 논란을 빚었지만 그런 보도가 나오게 된 데에는 MBC 책임도 일부 있다고 보는 이유입니다. 유경근 위원장이 전한 ‘1차 조사결과’를 뛰어넘는 ‘다른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적을 뿐만 아니라 이번 파문 자체가 ‘긴 조사’를 필요로 할 만큼 복잡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조사위원회를 꾸리고 진상 조사에 세월호 유가족을 참여시키기로 한 결정은 호평을 받아야 하지만, 그럼에도 파문이 발생한 이후 지금까지 MBC가 뉴스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관련 내용을 전하지 않고 있는 것은 유감입니다. 

유경근 위원장이 어제(15일) ‘언론에 의한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의 2차 피해 증언대회’에 참석해 한 발언도 MBC가 보도를 통해 전했어야 할 내용이지 유 위원장이 ‘피해 증언대회’에 나와서 해야 할 말은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MBC ‘뉴스데스크’는 어제(15일) 이 내용도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통상적인 제작 절차와 좋은 사내 평판…그게 더 문제다 

사실 제가 더 심각하다고 느낀 부분은 ‘사내 평판’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연출과 조연출 등 해당 프로를 제작한 PD들도 ‘MBC 정상화 파업’에 적극 참여하는 등 사내 평판도 나쁘지 않다고 한다. MBC 안에 ‘일베’ 성향의 직원이 여전히 남아 방송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세간의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는 얘기다.” 

유경근 위원장의 전언이긴 하지만 MBC는 고의성은 없었고, 일베 성향의 직원도 없었다는 걸 강조하는 차원에서 한 얘기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사고방식’이 더 문제라고 보여집니다. ‘일베 성향의 직원’이 발견되지 않으면 괜찮은 걸까요? ‘MBC 정상화 파업’에 적극 참여하는 PD였기 때문에, 고의성이 없는 단순 실수였기 때문에, ‘그런 점’을 감안해야 하는 걸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MBC 파업에 적극 참여한 평판 좋은 PD’가 ‘통상적인 제작 절차’에 따라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이런 ‘사태’가 발생한 게 더 문제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일베 성향 직원’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안의 관행’이 더 문제였다는 얘기입니다. 어제(15일) 유경근 위원장 발언을 미디어오늘도 보도했는데요,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조사 내용을 보면) FD는 세월호 장면과 관련해 ‘이런 게 나와도 될까’ 잠깐 고민했다고 한다며 “조연출도 ‘이런 거 써도 되나’ 고민을 했지만 장면만 따는 것이고 블러 처리를 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블러 처리를 미술부에 요구했다. 미술부 직원도 마찬가지로 시키는 대로, 시키니까 했던 것이다.” 

‘이런 게 나와도 될까 잠깐 고민했지만’ FD는 그냥 제작을 했고, 조연출 역시 ‘이런 거 써도 되나’ 고민했지만 ‘블러 처리’를 하면 되는 거겠지 하면서 그냥 썼다는 것 – 저는 이게 이번 사태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세월호 유가족과 시청자들도 ‘그런 화면을 쓰면 안 된다’는 최소한의 상식을 가지고 있는데 ‘MBC 파업에 적극 참여한 평판 좋은 제작진’이 ‘장면만 따는 것이고 블러 처리를 하면’ 사용해도 된다는 안일한 인식이 문제였다는 겁니다. 

   
▲ 세월호 참사 4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4월15일 전남 목포신항만에서 '기억하라 행동하라'를 주제로 문화제와 다짐대회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우리 안의 관행’에 대한 끊임없는 반성이 필요하다 

“세월호 참사 때 진도 팽목항에 취재 나온 기자들 중에 세월호 가족들 죽여야지 하고 온 사람은 없을 거에요. 그동안 배운대로 위에서 시킨대로 자기들 할 일을 한 거에요. 그 결과 우리들(세월호 유가족)은 진도에서 죽었죠. 이번에도 평소의 예능 제작 시스템대로 한 건데 그 결과로 우리들은 또 죽었어요. 그렇다면 이 문제는 지금까지 우리가 분석해온 것처럼 언론인 개인의 자질이나 데스크의 자세, 언론사의 독립성 같은 걸 다 떠나서 또다른 해결 방법이 필요하다는 얘기잖아요.”

경향신문이 보도한 유경근 위원장의 발언입니다. ‘세월호 보도참사’와 관련해 언론사 경영진과 일부 고위간부들 책임이 크긴 하지만 그렇다고 당시 현장에서 취재했던 기자들 책임이 가려지는 건 아닙니다.  저는 이번 사태 역시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예능제작 시스템을 언급하기 전에 ‘우리 안의 관행’에 대한 끊임없는 반성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런 화면을 쓰면 안 된다’는 최소한의 상식을 시청자들도 가지고 있는데 왜 제작진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인지에 대한 통렬한 자기반성이 우선돼야 하는 이유입니다.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media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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