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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사들이 왜 힘들어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기사승인 2018.04.30  14: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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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광의 발로GO 인터뷰 225] 복진오 PD

세월호 참사 즈음 되면 언론은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다큐멘터리나 인터뷰 기사가 주를 이룬다. 그래서 시선은 유가족에게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로 인한 피해자는 유가족뿐이 아니다. 피해자 중 하나가 세월호 참사 때 구조와 수색을 했던 민간 잠수사들이다. 

지난 23일 <MBC 스페셜>에서는 세월호 당시 민간 잠수사들의 구조와 수색 모습을 담은 ‘로그북 세월호 잠수사들의 일기’ 편이 방송됐다. 그동안 생각하지 못한 민간 잠수사들의 피해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제작 뒷이야기가 궁금해 지난 25일 서울 경복궁역 근처 커피숍에서 ‘로그북 세월호 잠수사들의 일기’ 편을 연출한 복진오 PD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다음은 복진오 PD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복진오 PD <사진=이영광 기자>

- 지난 23일 방송된 <MBC 스페셜> ‘로그북 세월호 잠수사들의 일기’ 편을 연출하셨잖아요. 마치신 소회가 있을 거 같아요.

“일단 저희 프로그램이 많이 부족했는데, 그래도 4년 동안 잠수사들을 같이 기록하고 옆에서 지켜보며 부족한 잠수사들의 현재 상황을 알릴 기회가 돼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만족하고 있습니다.” 

-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주변에 제 SNS를 통해서 소식을 조금 알리고 또 지인들이 보시고 연락을 주셨는데, 좀 잠수사들에 대해서 이해하고 나아가서 세월호의 상황을 아는 데 도움이 됐고, 또 잠수사들이 또 왜 그렇게 힘들어하는지 또 왜 이들이 이렇게 방치되어야 하는지 이런 거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많이 표현해주셨고 그런 것들을 잘 보여주는 것에서 좋은 프로그램이어서 덕분에 잘 이해했다고 주변에서 많이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로그북에 동료‧식구들에게도 말못한 혼자 겪은 감정들 고스란히”

- 로그북은 어떻게 아셨어요?

“저도 다이빙을 하는데, 다이빙하는 사람들은 다 그날그날 로그북을 써요. 그 당시 잠수사들은 세월호 현장에서 로그북을 쓸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저도 바지선에서 생활하면서 이것을 기록하는지 몰랐었어요. 그리고 동료들도 잘 몰랐죠. 그러나 수색이 끝난 후에 잠수사들과 자연스럽게 만나는 과정에서 자기가 기록했던 것들을 저한테 보여주더라고요. 저도 그걸 보고 나서 잠수사들이 그동안 말 못 한 이야기들을 참 심정적으로 진정성 있게 잘 적었다는 걸 알고 로그북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잠수사들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 보통 세월호 다큐하면 유가족 중심인데, 이건 잠수사 이야기잖아요. 어떻게 잠수사에게 주목하게 된 거죠?

“처음에는 언론들이 세월호에 대해서 제대로 보도나 규명이 안 되어서 많은 언론이 질타를 받았었잖아요. 그래서 저희 동료 PD들 몇 명이 세월호 현장을 잘 기록을 해 놓자고 뜻이 맞아서 몇 사람들이 모였어요. 저도 거기에 좀 참여를 했었고요. 잠수사들이나 바지선에 아무도 들어갈 수도 없었어요. 제가 아는 지인을 통해서 잠수현장을 알게 됐고 거기에 요청을 했어요. 저는 단순하게 하루나 한 번 정도 들어가서 이 바지선에선 어떻게 구조가 되고 수색이 되는지 스케치하고 그 과정만 담으려고 했었어요. 하지만 들어가서 잠수사들이 구조하고 수색하는 과정을 보니 굉장히 막중한 사명감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는 모습이 저한테 잘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나중에 이분들이 그 당시에 많이 오해도 사고 욕도 먹고 일부 그런 비난이 있었지만, 잠수사들이 하는 일을 정확하게 기록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라고 생각했어요. 나중에 어떻게 됐던 간에 이 현장을 기록해 놓자 하니 그분들도 동의해서 이렇게 기록을 하게 된 거죠.”

- 처음에 잠수사들은 뭐라고 했나요?

“처음에 그 바지선에서 수색하는 장면을 본 가족들은 잠수사들을 굉장히 신뢰하고 지지를 보냈어요. 왜냐하면, 곁에서 보니깐 열심히 희생자를 수습해주는 모습이거든요. 그런데 바깥에서 언론이나 잘 모르는 사람들은 다이빙 방식이 어떻다더라는 오해를 사서 답답한 상황이었죠. 그러니 제가 누구든지 자기들을 좀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사실을 좀 기록해서 나중에라도 알려주면 좋겠다고 설득을 했고 잠수사들도 그렇게 바랬고요. ‘너도 그렇게 프로페셔널한 건 아니지만 최소한 우리의 행위나 우리의 방식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 너가 한번 지켜보면서 기록을 해라’라고 하면서 저를 받아들인 거죠.” 

- 잠수사들이 하는 것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요?

“하루에 잠수 타임이라고 물때가 네 번 정도 잠수할 수 있는 잠깐의 시간이 벌어지는데 그 잠깐의 시간에 서로 빼지 않고 서로 순번이 되면 조금 힘들고 조금 어려워도 그걸 숨기면서 바닷속으로 뛰어 들어가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저한테는 그런 사실들이 느껴졌거든요. 나름대로 정말 할 수 있는 방법대로 할 수 있는 만큼 그들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요.” 

- 4년 동안 만나시면서 어떠셨나요?

“4년 동안 만나면서 저도 초창기에는 이분들이 거기 배에서 있었던 심도깊은 얘기를 안 했어요. 왜냐면 저에 대한 신뢰도 있는 것도 아니었고요. 근데 바지선에서 2014년 7월 10일 나오고, 국가에 의해서 쫓겨난 거죠. 이들도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적응을 못 하고 조금 힘들어하는 분들이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자주 만나게 되고 자주 만나면서 이분들이 조금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힘들어하는 이유가 뭘까 했을 때 이 잠수사들이 저한테 전해준 로그북을 보고 저한테도 말하지 못하고 동료한테도 말하지 못하고 식구들한테도 말하지 못한 자신들만이 겪었던 숨겨진 감정들이 있더라고요. 잠수사들의 얘기를 많이 들어주고 이후에도 왜 이런가를 기록을 계속 해야 되겠다고 해서 오히려 바지선에서 나와서 4년 동안 이들의 일상을 기록한 것들이 더 많아요.” 

   
▲ ‘로그북 세월호 잠수사들의 일기’ 편의 한 장면 <사진=MBC 화면캡처>

- 이야기 듣는 게 힘드셨을 것 같아요.

“그렇죠. 어느 순간부터 인터뷰할 때부터 동료들한테도 얘기하지 못했던 속내들을 저에게 얘기할 때 저도 그런 얘기들을 처음 들어서 저도 굉장히 슬퍼서 인터뷰하면서 같이 울고 그 후에도 그들을 찍은 것들을 다시 되돌려보면서도 그런 상황이어서 굉장히 잠수사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굉장히 힘들었고 지금도 많이 힘들고요.” 

- 밤마다 세월호에서 구조하는 꿈을 꾸기 때문에 수면제 없이 잠 못 잔다는 게 참 가슴 아프게 들리더라고요.

“실제 그런 요인이 겹쳐져서 그런지 아직도 수면제에 의존해서 잠을 자는 사람들이 7명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수면제 없이는 잠자기는 힘드니까 많이 괴롭고, 수면제가 없을 때는 술을 먹어야만 잠을 자는 사람들이 꽤 있고, 또 수면제를 먹어야 다음날 일이 되니깐요. 굉장히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수면제가 떨어져서 처방받으려면 정신과에 가서 처방을 받아야 하는데 그러기엔 시간도 없고 또 가기 힘들고 하다 보면 동료들끼리 수면제 있으면 서로 나눠 먹고 그러더라고요. 그런 모습 볼 때마다 참 가슴이 아프고 그랬죠.” 

- 국가가 이들에 대한 처우 개선을 너무 무시한 측면이 있잖아요.

“그렇죠. 해경은 이들이 처음부터 오랜 시간 동안 바지에서 힘들게 일을 했으니 모두 종합 건강검진을 해보라고 했어요. 일부는 현장에 돌아가서 안 했지만 일부는 병원에 가서 건강검진을 받아서, 건강에 이상이 있을 경우 국가가 다 책임진다고 했었거든요. 일부는 치료를 해줬지만, 치료 기간을 연장하는 과정에서 굉장히 힘들었어요. 언제까지만 해주겠다나 언제까지만 된다고 했어요. 이 사람들은 계속 더 아프고 심리적인 치유는 어느 기간에 끝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 면에서는 기간이 늘어나야 하는데 그 기간을 늘리기 위해서 여기저기 찾아다니고 정부 부처에서는 서로 이 부서 저 부서 돌렸어요. 그러한 과정에서 분노나 무력감이 더 느껴져서 잠수사들은 더 힘들었던 것 같고요.

정부에서는 이런 측면을 고려를 안 한 것인지 못 한 것인지 이렇게 문제가 불거지면 잠수사들에 대해서 면밀히 심층적인 조사를 해서 잠수사들 개개인이 어떤 상황인지 심층적인 조사가 이루어지고 거기에 맞는 합당한 치유와 대비책을 세워야 되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 거예요. 잠수사들을 개인이 아닌 하나의 집단으로만 보고 보상이 필요하면 보상을 해주면 되지 않나는 식으로만 생각하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보상문제가 깔끔하게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잠수사들이 굉장히 힘들게 요구를 해야 되는 상황에서 받아들여지는 거고. 그래서 지금 같은 경우에는 전체적으로 잠수사들에 대한 심층적인 면담을 통해서 어떤 상황인지를 파악해야 된다고 봐요. 그래야 적정한 조치가 나올 수 있죠.” 

“심층적인 조사와 합당한 치유‧대비책을 세워야 하는데 전혀 없었다”

- 그만두고 잠수부사들이 쫓겨나갈 때 어떤 상황이었어요?

“갑작스럽게 나갈 상황은 아니었어요. 정부에서는 이미 내보내려고 얘기를 했는데 내보낸다는 것을 미리 알면 잠수사들이 사기가 떨어지고 일을 안 할까 봐 내부적으로 결정은 했지만 내보내는 것을 갑자기 발표한 건지도 모르겠고 또 한편으로는 11명의 미수습자가 배 안에 있었을 때 장기간 수습을 해도 11명이 수습되는 사람이 없으니까 수습이 장기화가 됐어요. 잠수사들은 배의 선수 쪽을 수색을 해서 자기네들 구역에서는 이제 더 이상 안 나온다고 했고 배 뒤쪽은 다른 팀이 하고 있었거든요. 해군이나 다른 민간팀이 있었는데, 그쪽에 시신이 있는 것 같은데 우리들이 서로 위치를 한번 바꿔서 해보자 했어요. 서로 위치를 바꿔서 수색을 교차를 해보면 서로 못 본 부분을 찾을 수도 있거든요. 오래전부터 합의할 마음이 있었는데 서로 조심스러워서 얘기를 안 하고 있다가 하도 미수습자들이 수습이 안 되는 시간이 너무 길다 보니까 그 방법이 용인된 거예요. 태풍이 올 때는 잠시 피양해 있다가 태풍이 멎어서 다시 들어갈 때는 서로 구역을 바꾸기로 했었어요. 서로 구역을 바꿔서 민간 잠수사들은 중앙을, 중앙을 담당했던 해군은 앞을 하기로 했죠. 그렇게 해서 잠수사들도 중앙 쪽이나 뒤쪽에는 미수습자들이 몇 명정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고 우리가 더 찾으면 우리가 일을 제대로 했다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오해를 풀고 인정을 하겠지 해서 굉장히 고무됐었거든요. 준비를 했었어요. 자신감도 있었고요. 그런데 피양 나왔을 때 문자로 ‘수고했다 다 나가라’고 통보를 받아서 잠수사들도 거기에 대해서 굉장히 허탈해했고, 약간 배신감 같은 것을 느낀 거죠.” 

   
▲ <사진=MBC 화면캡처>

- 다큐를 보면 미수습자 가족들이 못 믿겠다고 얘기하는 부분도 나오던데 그건 어떤 상황이었어요?

“근데 그 미수습자 대표가 와서 자기들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주변에서 이 상황을 두고 말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다른 잠수방식, 수색을 할 수 있는 구조팀이 있다든지 이런 사람들이 주변에서 자꾸 수습이 안 되니까 이 말 저 말을 하고 그런 말들이 돌아 다니까 본의 아니게 굉장히 상황을 꼬이게 만드는 그런 과정이었다고 봐요. 저는 거기에서 미수습자 가족들이 그렇게 주장한 게 아니라 미수습자 가족들한테 잘못된 정보를 주는 그런 사람들, 미수습자 가족들을 잘 보살피지 못한 해수부나 수색 범대본이나 이런 분들이 역할을 제대로 못 했기 때문에 그러한 과정이 생겼다고 봐요.” 

- 이 다큐를 통해 말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가요?

“본인이 자발적으로 좋은 일을 위해서 왔던 사람들이 본의 아니게 뜻하지 않게 상처를 입었는데 그 상처에 대해서 좀 관심을 가지고 그 사람들이 치유되는 계기가 되길 바라죠. 제가 다큐멘터리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여러 잠수사의 기록을 찍었지만, 지금 잠수사들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가 뭐고, 이들이 왜 힘들어하는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힘들어하는 이유를 이들은 어디에든 함부로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었어요. 왜냐면 가족들이 더 힘들잖아요. 자식을 잃은 가족들 앞에서 자기네들 힘든 것을 얘기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그게 또 예의가 아니라 생각한 거죠. 그런데 저는 잠수사들과 가까이 지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그런 얘기를 차츰차츰 얘기했고 그 속에서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고, 잠수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잠수사들의 가족들도 힘들어진다는 생각에 그 원인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 원인을 이런 상태에 잠수사들을 그대로 방치한다고 하면 말 그대로 우리 사회에서 누가 재난현장, 어떤 문제에 대해서 책임을 지겠어요. 그런 문제를 우리가 같이 고민하고 같이 책임지고 같이 치유를 해주자. 그 치유의 방법을 찾고 싶어서 메시지를 던지는 거예요. 제가 어떻게 하자라는 메시지가 아니라 ‘이런 사람들을 이렇게 됐는데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될까요?’라고 저는 사람들한테 질문을 던지는 거예요.” 

- 취재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요?

“다 기억에 남아요. 아직도 많은 잠수사가 자기 차례가 되면 두려움, 망설임 없이 물속으로 뛰어드는 거. 밤에든 낮에든 물속으로 떨어지는 빡빡하는 소리가 굉장히 저는 강렬하고 인간의 어떤 본성인 거예요. 어려운 사람, 힘들어하는 사람을 위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주저함 없이 뛰어들 수 있는 것들. 그게 어쩌면 인간의 본성에도 그런 마음이 있을 것 같거든요. 그런 행위를 나는 직접 본 거고요. 그래서 밤에 낮에 뛰어 들어가는 잠수사들의 모습보다도 물속으로 들어가는 그 소리가 굉장히 기억에 남아요.” 

- PD님에게는 세월호가 어떤 의미인가요?

“개인적으로는 운명처럼 저도 세월호 현장을 갔고 그 역할 속에서도 뜻하지 않게 잠수사 사람들을 만나고 잠수사들에 대한 기록을 제가 해서 한편으론 다행이다 싶어요. 그때에만 해도 여러 가족 이야기나 가족들을 취재 사람들이 많이 있었거든요. 어떻게 보면 운명처럼 잠수사들을 만났고 잠수사들을 기록했다는 게 의미가 있죠. 나중에라도 세월호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에 있어서 일조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 당시의 한국사회의 축소판, 역사라고 생각해요. 세월호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해결하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갈지가 세월호 문제에 담겨있다고 봐요. 굉장히 한국의 역사, 모든 것들이 축소되어 세월호 문제에 있다고 생각해요.” 

   
▲ <사진=MBC 화면캡처>

- 독립 PD이시잖아요. 지상파 방송에서 독립 PD에 대한 처우 등이 아주 열악해서 문제가 되곤 하는데 새로운 사장 체제하의 MBC는 어떤가요?

“많이 바뀐 것 같고요. 저는 MBC와 처음 일을 했는데 그동안 동료들이 일하는 것을 보면 MBC가 상당히 많이 바뀐 것 같고요. 예전에 편집하고 시사하는 과정에서도 많이 요구했는데 이번만큼은 이런 작품에 대해서는 거의 제작진의 의견을 수용을 해주었고 제작에서의 계약관계도 저희가 먼저 이렇게 이렇게 하겠다고 얘기를 하면 그런 요구들을 거의 받아주어서 계약에서도 거의 99%는 저희가 요구한 대로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그래서 그런 면에서는 예전의 MBC하고는 많이 달라진 것 같고, 외주 제작사로서 존중을 많이 받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마지막으로 <GO발뉴스>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세월호 문제가 끝난 게 아니에요. 세월호 가족들, 세월호가 왜 아직도 침몰되고 초기의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 발생했는지에 대해서는 2기 특조위가 계속해서 조사를 할 거예요. 4주기가 지났고 분위기가 지났다고 해서 여기에 대해서 무관심하지 마시고, 계속해서 관심을 가져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영광 기자

이영광 기자 kwang38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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