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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국회 협력에서 여전히 한국·바른미래 방해”

기사승인 2018.04.23  14:3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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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광의 발로GO 인터뷰 221] 세월호 희생자 고 유예은 양의 어머니 박은희 씨

세월호 참사 후 4년이 흘렀다. 그 사이 국정농단으로 인한 1700명이 촛불을 들었고 그로 인해 대통령이 파면당하는 헌정사상 초유의 일을 겪었다. 비록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사유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많은 사람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징후 중 하나로 세월호 참사를 꼽는다. 세월호 참사는 그만큼 한국사회에 중요한 일이다. 

지난해 5월 정권교체 후 맞이하는 4월 16일 안산 합동 분향소에서는 4년 만에 영결식이 열렸다.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시민이 참석해 고인들의 넋을 위로했다. 영결식을 유가족들은 어떻게 치렀는지 궁금해 영결식 다음 날인 17일 안산 합동 분향소에서 세월호 희생자 고 유예은 양의 어머니 박은희 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다음은 박은희 씨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세월호 희생자 고 유예은 양의 어머니 박은희 씨 <사진=이영광 기자>

“<그날, 바다> 본 가족들, 며칠 몸살 앓았다”

- 어느덧 세월호 4주기를 맞이하셨어요. 올해는 정권교체 후 첫 번째 맞이하는 것이라 전과 달랐을 거 같은데 어떠셨어요?

“많은 분이 정권 교체되어 남다르지 않냐고 물어보시는 데 저희 부모 입장에서 유가족들에게 4월 16일은 매년 똑같아요. 아이들이 여전히 옆에 없고 아이들과 약속한 진상규명은 아직 시작 못 했죠. 추모공원 사업도 발표만 했지 아직 구체적인 계획안이라든지 나오지 않았거든요. 큰 차이는 없는 거 같아요.

굳이 차이를 찾자면 정권이 바뀌기 전에는 몸과 마음이 같이 힘들었다면 지금은 몸을 써서 싸우는 일은 적어졌지만, 대신에 기다려야 하는 게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전엔 요구하며 4월 16일을 보냈다면 지금은 ‘해줄게. 기다려. 알아서 해줄 거야’라는 이야기를 듣기 때문에 진상규명도 그렇고 추모사업도 그렇고 저희가 심적으로 느끼는 부담감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 커진 거 같아요.” 

- 4월이면 부모님들 몸이 아프시다고 하던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어요?

“당연하죠. 일단 꽃이 피잖아요. 부모들은 3월 꽃이 피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몸살을 앓는 거 같아요. 왜냐하면, 꽃을 보면 그때 있었던 일이 생각나서 꽃만 봐도 애들 소리가 들리는 거 같아요. 그러나 정작 아이는 거기 없잖아요. 그래서 꽃피기 시작하는 시간이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인 거 같아요.” 

- 부모님 중에는 암 투병하시는 분도 있다던데.

“원래 암 투병하시다 참사 이후 돌아가신 분이 두 분 정도 계시고 그분들 외에 건강하셨는데 암으로 돌아가신 분도 계시고 여전히 투병하시는 분도 계세요. 조부모님 가운데에서도 갑자기 돌아가시는 분도 계세요. 나중에 통계를 내면 참사로 가족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 옆에서 돕던 분도 힘들어하셨어요. 그런 분들까지 하면 돌아가신 분은 굉장히 많은 거 같아요.” 

- 트라우마도 많이 있잖아요.

“그렇죠. 다 가지고 있죠. 예를 들어 어두운 데 들어가는 게 아직도 힘들어요. 얼마 전에 <그날 바다>라는 영화가 개봉했잖아요. 시사회를 안산에서 제일 먼저 했거든요. 저는 일정이 있어서도 못 갔지만, 용기가 안 나더라고요. 영화관 들어가는 자체가 힘들고 아직은 바다나 배를 보는 게 힘들어요. <그날, 바다> 본 가족들이 고생하거나 며칠 몸살을 앓았어요.”

   
▲ 세월호 다큐멘터리 영화 ‘그날, 바다’ 공식 포스터

- 어제(16일) 합동 영결식이 열렸어요. 4년 만에 열리는 것인데 어떠셨어요?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에요. 합동 분향소 곰팡내가 엄청 심하거든요. 왜냐면 꽃을 계속 꽂아 놓아야 하기 때문에 꽃 사이에서 생기는 곰팡이가 있어요. 매번 분향하러 들어갈 때마다 쾨쾨한 냄새가 너무 힘든 거예요. 제가 맡기에도 힘들고 쾨쾨하고 어두운 것에 아이들이 배 안에 있는 것처럼 갇혀 있는 거잖아요. 너무 괴로웠어요. 그러나 날씨가 오전에 흐리다가 오후 개면서 영정사진 위로 햇볕이 환하게 비추더라고요. 아들에게 미안하기도 했고 4년 만이라도 햇살을 보게 해줘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이별식을 하는 게 맞나 하는 거죠. 이랬다가 단원고 교실처럼 약속만 붙들고 이 아이를 보내는 게 맞나 하는 두려움이 있었어요. 4년 전 발인하는 시간으로 다시 돌아간 거죠. 너무 힘들고 아이들 생각에 너무 억울하게 간 게 너무 화나고 불쌍하고 어젠 힘든 시간이었죠.”

- 페북에 보니 하루 종일 우셨다던데.

“모든 가족이 그랬어요. 그냥 그 자리를 어떻게 해서든 버텨야 한다는 생각으로 앉아 있었지 저희가 아침에 위령제 식으로 분향소 안에서 예식이 있었고 각자 추모 공원에 다녀왔거든요. 얘기해보니 근래 잠을 다 못 잤더라고요. 밤을 꼴딱 새고 울은 거니까 부모님 중엔 울다가 실려 가신 분도 계시고 끝까지 못 지키고 대기실에 들어가신 분도 계시고 저희 자녀들도 많이 울었거든요. 저도 집에 가자마자 기절하다시피 잠들었는데 새벽 한 두시에 자는 애들이 어젠 10시도 안 되어 눈이 빨개서 머리가 아프다고 일찍 자더라고요. 애들이 그럴 정도면 부모들은 더 심하죠.”

- 전날 기분은 어떠셨어요?

“부모들 대부분 무서워했어요. 내일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라는 말을 많이 했죠. 근데 가족들은 이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걸 저희 스스로에게 계속 되뇌었고 오신 분들에게 이게 시작이라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결연한 마음 그러면서도 그걸 감당할 수 있을지를 밴드나 톡방에 서로 올리더라고요.”

- 뭐가 가장 무섭고 두려웠어요?

“영결식 자체가 저희는 두려웠죠. 가족들은 이게 꿈만 같거든요, 악몽이라는 것도 부족해 지옥에 산다는 기분이 들거든요. 누가 제발 이 꿈에서 깨워줘서 거짓말처럼 아이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거든요. 그러나 이런 행사를 할 때마다 아이는 이곳에 없다는 걸 확인을 하는 거잖아요. 그 시간이 저희는 무서운 거죠.” 

- 문재인 대통령이 영결식에 참석하지 않으셨잖아요. 그래서 가족들은 서운하셨을 거 같은데.

“많이 서운했죠. 왜냐면 저희 아이들 갈 때도 대통령은 없었잖아요. 여전히 대통령이 자기들에게 못 오도록 하는 게 뭘까라는 마음 때문에 서운한 마음이 있어요. 그리고 지금 안산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대통령이 와서 뭔가 힘을 실어줄 만한 이야기를 해주기를 기대했는데 오지 않으셔서 서운했죠. 그 대신 사회자가 대통령 메시지를 대독했죠. 그걸 통해서라도 참사의 의미와 앞으로 추모공원이 필요한 이유를 강하게 이야기해 주셔서 그나마 조금 위안이 됐어요.” 

- 지난해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잖아요. 문재인 정부에서 세월호는 달라졌다고 느끼시나요?

“아주 조금 달라졌죠. 예전에는 방해를 하기 때문에 저희가 뒤로 밀리고 있었다면 지금 저희를 밀치는 힘이 없어진 거 같아요. 근데 여전히 저희가 앞으로 가지 못하게 하는 힘은 아직 남아 있는 거 같아요. 그리고 여전히 자유한국당이나 바른 미래당에서 특조위에 들어와 있고 국회 안에서 무엇을 의결하든 간에 그들이 방해할 여지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에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봅니다. 대통령의 의지가 현장까지 오기에는 아직도 그 아래에 정부 조직이 그대로고 국회가 협력해야 할 부분에서도 여전히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계속 방해를 하기 때문에 저희가 실감하기에는 아주 많이 달라졌다는 느낌이 없어요.” 

   
▲ 세월호 참사 4주기인 16일 오후 경기 안산 세월호참사 정부 합동분향소에서 열린 4·16세월호참사 희생자 정부 합동 영결·추도식에서 유가족 및 참석자들이 추모시를 듣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 2기 특조위 격인 사회적 참사 특조위에 자유한국당 추천으로 황전원 씨가 들어와서 논란인데.

“그 사람들은 다른 별에서 온 거 같아요. 상식도 없고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사람들인 거 같아요. 저희가 기대를 안 했지만 늘 상상 이상인 것 같아요. 어떻게 들어와서 무례한 행동을 하고 자기 이익을 위해 선거에 나가느라고 박차고 나갔다가 떨어진 다음 아무렇지도 않게 2기 특조위에 황 씨를 추천했다는 건 자한당이 저희를 엿 먹이려는 거고 황전원은 그만큼 저희에 대해 일말의 양심이나 가책도 가지지 않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던 거죠. 그래서 저희 가족들은 분노하고 과연 이렇게 계속 자한당의 방해를 받으면서까지 특조위를 계속 밀고 가야 허는지 고민이 있죠. 그래서 저희가 특조위를 감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조직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란 의견을 내는 거죠.” 

“아이들 목숨이 朴미용만도 못했다니…이후 거짓말들 너무 끔찍”

- 지난달 28일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 7시간에 대한 검찰 발표가 있었잖아요. 어떻게 들으셨어요?

“제가 참사 초기 집회 현장에 가면 세월호를 학살이라고 말하시는 분들이 계셨어요. 그러나 전 그분들에게 그렇게 얘기하지 말아 달라고 했어요. 아직은 사고라고요, 왜 그랬냐면 그러면 저희 아이들이 너무 불쌍한 거예요. 솔직히 저희가 대통령의 7시간에 대해 분노하고 의문을 가지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최소한 뭐라도 했기를 바랐어요. 그래야 아이들이 덜 불쌍하죠. 그러나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누군가를 올 때까지 기다렸고 또 누군가가 와서 머리해주기를 기다렸잖아요. 저희 아이들에게는 1분 1초가 너무 촌각을 다투는 시간이었거든요. 아이들 목숨이 박 대통령 머리만큼도 못 했다는 생각이 드니까 정말 죽을 거 같았어요.” 

- 무엇이 가장 충격적이었어요?

“거짓말한 거요. 그것도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같이 아무렇지 않게 국회 청문회장에 나와서도 그렇고 언론을 통해서도 거짓말했다는 게 너무 끔찍했어요. 그다음으로 끔찍했던 건 그 긴박한 상황에 너무 평온했잖아요. 그게 끔찍했죠. 온 국민이 애를 태우며 부모들과 같은 마음으로 TV에서 눈을 못 뗄 때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그게 너무 소름 끼치더라고요.”

- 6일 박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에 대한 1심 선고가 있었잖아요. 하지만 세월호 부분은 빠졌는데.

“그렇죠. 저희가 법을 몰랐었는데 법원에 가보니 처음 기소한 내용이 아니면 판결문에 안 들어가더라고요. 박 전 대통령 탄핵 당시에도 세월호는 누락 됐죠. 조사가 될 수 없었잖아요. 왜냐면 박근혜 정권이어서죠. 지금 새롭게 세월호 관련해서 나오는 내용이 대부분 구속된 다음 나온 것이고 그것이 못 들어가지 않았나 해요. 저희가 다음에는 추가로 해서 넘어서 304년 정도는 때려야죠. 몇십 년으로는 안됩니다. 각자가 살았다면 몇 년을 더 살았겠어요? 저희가 인심 써서 1년씩만 해도 304년은 살아야죠.” 

   
▲ 2014년 4월16일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전남 진도 해상에서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 사고 상황에 대해 보고 받고 있는 모습. <사진=청와대 제공, 뉴시스>

- 안전 공원에 대한 논란이 있는데.

“안산 시장에 안전 공원 세우겠다고 약속한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시장 된 다음 약속을 지켜야 해요. 근데 이걸 공증으로 저희가 받아놓은 것도 아니고 약속에 대해 책임을 본인 스스로 양심에 따라 해야 하는 대 지금 보수 야당들이 정책으로 선거에 나오는 게 아니라 모든 현수막이 똑같아요. 납골당 반대 말고는 정책도 없어요. 그래서 너무 한심하고 화나고 안산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요. 그러나 아이들 생각하면서 버텨야겠죠.

그리고 앞으로 해야 할 것은 약속한 사람이 시장에 당선하도록 하고 그 분이 약속을 실천하도록 지역 여론을 만들고 협력하는 게 가족의 몫인 거 같아요. 그리고 어제 정부에서도 추모공원의 의미나 안전공원 의미에 대해 설명 했으니 앞으로는 더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약속한 대로 전 세계에서 누가 와도 공감되고 잘 만들었다고 할 정도의 공감을 이끌어 내야죠.” 

- 분향소 철거하기로 했잖아요. 가족 입장에서는 어려운 결정이었을 거 같은데 이에 대해 가족들은 뭐라고 하나요?

“처음엔 난리가 났었죠. 아직 첫 삽을 뜬 것도 아니고 이건 부지를 정부가 매입한 후 설계 공모가 나가고 심사해서 세워지기까지 짧으면 4년 길면 5년 이상이 걸린다고 하는 데 그 시간을 어떻게 버티려는 것이냐에요. 공간이 주는 힘이 있거든요. 확실해지기 전에는 못한다고 했죠.

그러나 안전 공원 이야기 나온 지가 2~3년 됐지만 진행되지 않았어요. 시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이곳을 깨끗이 비워주는 거고 조건을 달아 발아들인 거예요. 어쩔 수 없이 나가는 거라 굉장히 불안하죠. 그리고 외부에서 오시는 분들도 이게 사라졌을 경우에 외부와 가족들이 어떻게 연대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있죠.” 

- 목포신항에 세월호 있잖아요. 세월호 모습을 보면 어떠신가요?

“성한 곳이 없잖아요. 그래서 부모들은 세월호를 보면 아이들 같은 생각이 들어요. 또 한편으로는 그 안에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찾을 수 있었잖아요. 그러니 고맙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죠. 5월 첫 주 정도에 직립을 시도할 거예요. 직립한 뒤 저희가 몰랐던 진실들이 밝혀져야죠. 조사해도 확실한 증거가 안 나와서 많이 속상했거든요. 예를 들어 CCTV 녹화 영상이 나왔을 때도 참사 당시 모두 꺼져 있었잖아요. 중요한 단서가 안 나왔기 때문에 여기서 과연 저희가 제대로 된 증거를 얻을 수 있을까란 생각이 있었는데 304명의 영혼이 흔적을 남겨줬을 거라고 믿어요. 분명히 흔적이 있고 침몰의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아직 조사가 안 된 부분에서 조사되면 분명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믿어요. 그리고 아직 나오지 않은 사람들도 그곳에서 찾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1차 회의를 마친 황전원 위원이 지난 3월29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세월호참사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를 방문, 유가족들의 항의를 받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 언론들이 세월호 보도를 하잖아요. 특히 공영방송인 KBS와 MBC는 열심히 보도하는 데 어떻게 보세요?

“얼마 전 KBS에서 4월 16일 방송이 나가면 좋겠다고 음악회에 보낼 영상으로 촬영을 왔었어요. 그러나 가족들은 이전에 한 것 때문에 분노해서 하기 싫다고 거부했었거든요. 그러나 결국 내부적으로 토론하고 KBS가 와 설명해서 영상 나가는 걸 허락하고 16일 음악회 중간에 영상이 나갔거든요,

물론 밉죠. 지금까지 왜곡된 보도를 하고 알려달라는 걸 알려주지 않고 감추다가 정권이 바뀌니 앞다투어 저희가 감당 안 될 정도로 많은 방송사가 오셔서 촬영하셨거든요. 밉지만 뒤늦게라도 언론을 통해서 보도하잖아요. 또 보도되어야 국민이 잊지 않고 기억하니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을 하는데 그래도 저희는 이런 생각이 있어요. 정치인과 언론은 언제라도 뒤돌아설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있죠.”

- 마지막으로 <GO발뉴스>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려요.

“일단 저희가 참사를 겪은 후 독립 언론을 알게 된 것에 대해서 굉장히 미안하면서도 독립 언론이 있어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더 감사한 건 수구 언론이나 주요언론이 아닌 대안 언론도 챙겨보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어떻게 보면 이 사회를 이끌어 가는 힘이 아닌가 해요. 왜냐면 이 사회는 다수가 이끌어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깨어있는 소수가 이끄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먼저 <GO발뉴스> 등 독립 언론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후원해 주시고 이들이 계속 뛸 수 있도록 동해준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이분들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더 많이 후원해 주시고 함께해 주시고 더 많은 독자가 생기길 바랍니다.”

이영광 기자

이영광 기자 kwang38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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