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성태의 와이드뷰] 역사에 길이 남을 언론사별 ‘이재용’ 사설들
15만을 넘기는 데 불과 이틀도 걸리지 않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은 데 대해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는 가운데, 이 판결을 선고한 정형식 부장판사(서울고법 형사13부)에 대해 특별감사를 요청하는 청와대 청원이 17만 명(7일 오후 1시 현재)을 돌파했다.
엄청난 ‘열기’다. 정형식 판사를 언급한 전체 청원 수도 860건을 넘어섰다. 앞서 평창올림픽 남북 단일팀과 관련해 IOC에 반대 서한을 보냈던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에 대한 올림픽 위원직 파면을 요청한 청원 속도를 넘어섰다는 평가다. 나 의원에 대한 파면 요청 청원은 32만 명을 돌파했다. 20만 명을 넘어서면 국민들에게 청원과 관련한 답을 내놓고 있는 청와대가 향후 어떻게 대응하게 될지도 주목된다.
▲ <사진 =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
이렇게 대한민국 사법부의 판결 사상 ‘역대급’으로 기록될 이재용 부회장의 집행유예 판결과 정형식 부장판사, 그리고 법원에 대한 비판 여론이 판결 후 이틀이 지난 7일에도 가라 앉지 않고 있다. MBC <스트레이트> 진행자로 나서 소위 ‘장충기 문자’를 폭로했던 <시사인> 주진우 기자도 7일 오전 소셜미디어에 아래와 같은 글을 남기며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이재용 가카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삼성에겐 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다시 일깨워줘서 감사합니다.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오늘도 정형식을 생각합니다. 형식을 잊지 않겠습니다. 이명박보다 크신 이재용 가카의 은혜도 매일매일 가슴에 새기고 찬양하겠습니다. 언제까지 웃으실지….”
이재용 사설로 보는 기레기 판별법
이에 더해, 소셜미디어 상에서는 소위 이재용 집행유예 판결 직후 쏟아진 각 매체의 사설들이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이재용 항소심 판결이 법조계 ‘역사’에 길이 남을 판결이었던 만큼, 몇몇 진보 언론을 제외하고 ‘용비어천가’를 부른 언론들의 사설 역시 언론사에 새겨 마땅해 보인다.
“작년 1월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던 판사는 ‘삼성 장학생’이라는 매도와 문자 폭탄 피해를 입었다. 누구라도 이런 사회 분위기에 위축되기 마련이다. 이미 사법부 지도부도 정권과 코드를 맞추는 사람들로 교체됐다.
이 상황에서 재판부가 순전히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을 내릴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법원에는 아직 법과 양식(良識)을 우선하는 꼿꼿한 판사들이 있었다. 2심 판사들도 온갖 공격을 당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 사회를 받치는 기둥이 아직은 건재하다고 느낀다.”
마치 ‘무죄’를 선고 받았다는 듯, “이재용 사건, 피해자를 범죄자 만든 것 아닌가”라는 제목의 위 <조선일보>의 사설이 대표적이다. <조선일보>는 국민적 비난이 쏟아진 정형식 판사와 재판부를 “법과 양식(良識)을 우선하는 꼿꼿한 판사들”이라 칭송하기까지 했다.
여기에 더해 “대통령이 기업들을 겁박하고 강요한 사건을 기업의 뇌물 상납으로 바꾸기 위해 정부는 고비마다 재판에 개입했다”며 “청와대는 재판 도중 캐비닛 문건을 찾아 특검을 통해 법원에 제출했고, 공정거래위원장이 이례적으로 증언대에 서 이 부회장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며 현 정부에게 화살을 돌리기까지 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일개 피해자고, 그런 피해자를 청와대가 공격했다는 것이다.
“일개 피해자인 이재용 부회장 재판과 관련해 청와대가 “온갖 무리수를 동원해 억지로 ‘정경 유착’ 모양을 만들려고 했다면 수사가 아니라 정치 공격이다”
이재용 회장의 집행유예 판결에 환영의 뜻을 나타낸 언론사의 사설은 제목만 봐도 판별이 가능하다. 소셜 미디어 상에서 회자된 위 사진에서 보듯, 각 언론사별 논조는 소위 ‘기레기 판별법’이라 불려도 무방할 정도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이를 두고 어느 페이스북 사용자는 아래와 같이 간단히 정리하기도 했다.
“조선/이데일리/동아/국민/중앙/매경/매일/서울경제/서울/파이낸셜/한경 기레기 낙점.
세계/한국 애매한 스탠스지만 이런 사안에 애매하게 나왔기에 역시나 기레기.”
▲ 사진=2월 6일자 한겨레신문 <‘이재용 집행유예’ 판결을 대하는 ‘두 개의 눈’> 기사 캡처 |
‘삼성장학생’, 언론도 예외 없다
“우리나라 언론사들의 최고 광고주는 삼성이란 건 다 알고 있고, 이재용이 갇히고 재판을 받으면서 삼성의 광고비가 작년부터 1/4로 줄었다고 해요. 언론사로서는 굉장한 타격이죠. (이번 판결로 광고비가) 다시 늘어나겠다는 그런 기대감도 있겠죠.”
7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언론들의 논조를 두고 이렇게 비꼬았다. ‘삼성장학생’ 사법부에 이어 삼성의 광고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언론사들의 상황을 적확하게 비꼰 것이다.
이른바 ‘기레기’들에 대한 비판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이 기레기들에게도 등급을 부여해야 한다고 보는 쪽이다. 이미 그 스스로 ‘괴물’이 되어 버린 ‘1등 신문’ <조선일보>와 보수지를 비롯해 친기업, 친자본 친위대인 경제지들이야말로 한국 사회를 좀 먹는 ‘기레기 오브 기레기’라고 라벨링을 해줘야 한다.
독한 비판은 우선 그들에게로 향해야 한다. 2000년대 초반 한국사회를 강타했던 ‘안티조선’ 운동 역시 같은 맥락이었다. 18년이 지난 지금, ‘기레기 판별법’은 훨씬 쉬워졌다. 5일자 사설만 비교해 봐도 명확하다. 역사적인 이재용 항소심 판결이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이 이렇게나 크다.
하성태 기자
하성태 기자 woody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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