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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쓰레기 같은 방송국, 피디들을 고발합니다”

기사승인 2018.01.25  17:5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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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성태의 와이드뷰] 한 방송작가의 내부 고발글로 살펴 본 열악한 방송 노동자 환경

   
▲ 박원순 서울시장이 24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열린 tbs 교통방송 프리랜서 정규직화 발표 기자 설명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방송의 정상화에는 프리랜서 비정규직 노동의 정상화도 포함되어야 한다. 서울시의 tbs 프리랜서 정규직화와 새로운 고용모델이 대한민국 언론사와 수많은 프리랜서의 노동현장으로 확장되길 기대한다.” (박원순 서울시장)

박원순 시장의 서울시가 또 한 번 반가운 소식을 내놨다. 24일 서울시는 tbs 교통방송의 프로듀서(PD), 작가, 기자 등 프리랜서 인력 대부분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이날 기자회견 자리에서 “국내 방송사와 공공기관 가운데 프리랜서의 정규직화를 추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tbs는 그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정규직의 백화점’이라 불렸을 정도다. 1990년 개국 이후 정규직은 10% 수준이었고, 정규직은 1~2년 근무 후 시로 복구하는 서울시 공무원들이 대부분을 차지해왔다. tbs는 서울시 도시교통본부의 관리·감독을 받는 산하 사업소 개념의 방송국이다. 

반가운 소식은 또 있다. 이에 앞서, tbs에도 노조가 탄생했다. 주간지 <시사인>에 따르면, 서울시 산하 방송사인 tbs에서 일하는 파견·계약직·프리랜서 노동자 100여 명이 지난 1월 19일 전국언론노조에 가입, 공식적으로 tbs지부가 출범했다. 파견·계약직과 더불어 프리랜서까지 포함, 사업장 단위로 조직된 방송사 비정규직 노조가 탄생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서울시의 정규직 전환에 포함된 비정규직은 272명으로 프리랜서와 파견용역 형태로 근무하는 PD, 카메라 감독, 아나운서, 기자, 교통 리포터, 웹디자이너 등 주요 직종이 포함됐다. 그중에서도 작가 직군은 좀 더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작업 특성상 방송 작가는 일반적인 정규직 전환 조건을 충족시키는 경우가 드물다. 서울시는 작가군을 포함, 이 조건에 부합되지 않는 직군도 전속계약 체결 등을 통해 직접고용 방식을 유지하기로 했다. 

분명 획기적인 변화다. 하지만 ‘슈퍼갑’으로 불리는 여타 지상파/방송국들의 사정은 어떨까. 계약직과 비정규직, 프리랜서의 왕국인 지상파와 공영방송의 일례를 파악할 수 있는 일종의 ‘내부 고발’ 글이 최근 소셜미디어 상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내가 겪은 쓰레기 같은 방송국, 피디들을 고발합니다”는 제목으로 24일 KBS 구성작가협의회에 게시판에 게재된 글이 문제의 고발 글이다.  

“시사고발 프로그램, 너희를 고발한다”

“출근 1주일에 되었을 때, 나는 담당 피디에게 말을 했다. 어떻게 이렇게 일을 시킬 수가 있냐고. 그 피디가 한 말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여기는 똑똑한 작가가 아니라 말 잘 듣는 작가를 원하는 데야. 그렇게 똑똑하게 굴 거면 여기서 일 못해. 다들 그렇게 일해왔고, 그게 여기의 규정이야.’ <그것이 알고싶다>가 적폐 청산을 부르짖을 때마다 나는 웃긴다.”

   
▲ <사진출처=KBS 구성작가협의회 게시판 캡처>

글쓴이는 자신을 “수 년 간 방송계에서 일한 작가”로 소개했다. 이어 글쓴이는 “내부고발자가 살기 힘든 세상”이라면서도 “작가의 일을 하며 겪었던 부조리들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됐다”고 밝혔다. 

‘시사고발 프로그램, 너희를 고발한다’, ‘정규직 피디들은 권력자다’, ‘고용노동부는 재미있는 집단이었다’로 나뉜 이 글은 글쓴이가 방송 작가로 일하며 겪은 자신의 경험을 내부 고발 성격이 강하다. 글쓴이는 <그것이 알고 싶다>, <뉴스타파> 등에서 막내 작가로 일했으며,  EBS와 KBS에서도 근무했다고 밝혔다. 그 중 글쓴이가 앞선 두 프로그램에서 겪은 경험은 이랬다. 

“밖에서는 정의로운 척, 적폐를 고발하겠다는 피디들이 내부의 문제엔 입을 조개처럼 꾹 닫았다. 출근 1주일에 되었을 때, 나는 담당 피디에게 말을 했다. 어떻게 이렇게 일을 시킬 수가 있냐고. 그 피디가 한 말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여기는 똑똑한 작가가 아니라 말 잘 듣는 작가를 원하는 데야. 그렇게 똑똑하게 굴 거면 여기서 일 못해. 다들 그렇게 일해왔고, 그게 여기의 규정이야.’ <그것이 알고싶다>가 적폐 청산을 부르짖을 때마다 나는 웃긴다.”

“뉴스타파 <목격자들>도 놀라운 곳이었다. 면접 때도, 내일부터 출근하라는 합격통보를 할 때도 그쪽에선 페이를 알려주지 않았다. 첫 출근 날 나는 페이가 얼마냐고 물었다. 곤란한 듯 담당피디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공중파처럼 120만원씩은 못 줘.’ 당시  공중파의 막내작가 페이는 약 140만원 가량이었고, 최저임금은 126만원이었다. 최저임금도 안 되는 임금으로 상근을 하며 프리뷰, 섭외 등 많은 일을 떠맡았다. 

시사 프로그램의 특성 상 섭외나 후반작업이 굉장히 까다로워 근무시간은 항상 엄청났다. 사회 정의를 지키는 일인데, 크라우드 펀딩으로 돈이 넉넉지 않아서, 그 제작진은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런데 나는 물어보고 싶다. 그럼 당신들도 나만큼 최저임금도 못 받으면서 일하나? 그건 분명 아니었다. 갑질을 고발하는 그들이 막내작가들에게 갑질을 하는 형국이 아닌가. 나는 그곳에서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슈퍼갑’ 공영방송과 비정규직 작가의 눈물

글쓴이는 말단 작가로서 공영방송에서 겪은 일화도 기술했다. 글쓴이는 “아직도 기억이 남는 건 EBS에 있을 때”라며 “야, 너는 그래서 정규직이 안 되는 거야”, “야, 내가 이런 것까지 해야겠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PD가 컴퓨터 배경화면에 백남기 농민의 사진과 ‘Pray for Korea’라고 적어놓았다며 아래와 같이 덧붙였다. 

“하지만 당시 같은 부서에 근무하던 모든 막내 스태프들은 그 피디의 조연출과 막내작가를 위해 먼저 기도했다. 그 피디의 폭언에 매일 눈물짓는 그들의 마음을 헤아렸기 때문이다.”

또 글쓴이는 “내가 가장 오래 몸담았던 KBS에는 술을 마시고 회의에 들어오는 피디가 있었다”며 “대낮부터 거나하게 취해서 전 스태프가 대기한 회의에 들어와서도 미안한 기색이 없었다. 왜냐고? 그 사람은 피디였으니까. 그 이유 하나만으로 그는 파워당당했다”며 그 PD가 143일 동안 계속됐던 KBS 새노조의 파업에도 열심히 참가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프리랜서 막내작가 입장에서 본 ‘슈퍼갑’ 방송사의 실정에 대해서도 가감없이 비꼬았다. 

“그렇게 내부에 완전 짜여진 규정이 있는 거면, 막내작가도 정규직 혹은 4대 보험이 되는 계약직이라도 시켜줘야 하는 거 아닌가? 프리랜서라면 그에 걸맞게 유동적으로 움직이게 해줘야지, 대체 상근은 왜 시킨단 말인가? 인격적으로 존중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그 외 일한 만큼 정당한 임금을 지불해야 당신들이 말하는 사회 정의에 맞는 거 아닌가?

그러면서 파업이니 뭐니, 권력에 희생당한 약자인 척하는 당신들이 웃긴다. 당신들은 최소한 먹고 살 걱정은 없으니 그런 것도 하겠지. 나는 당신들의 착취로 당장 먹고 살 일이 아쉬워 사회에 관심조차 주기가 어렵다.”

문재인 정부의 방송 환경 ‘적폐청산’, 수술은 시작됐다

마지막으로 방송계의 노동 환경에 대해 무관심하게 대응했던 고용노동부 조사관의 사례를 소개한 글쓴이는 “이 글은 얼마든지 다른 곳에 퍼가셔도 좋습니다”며 “널리 알려질수록 좋은 것 같아요. 우리 작가들의 처지가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하는 바람입니다”며 아래와 같이 물었다. ‘전태일 열사’를 언급한 이 방송 작가의 호소는 꽤나 절절했다. 

“10여 년 전, SBS에서 막내작가 한 분이 본사 옥상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이후에도 여전히 문제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노동자의 비참한 선택을 조명해야 할 언론이 자신들의 치부가 두려워 눈을 감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모른다. 

가끔 나는 생각한다. 전태일 열사처럼 내 몸에 불이라도 지르고 방송국 앞을 뛰어다녀야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줄까, 방송 노동자의 처지가 개선될까, 하고. 아직 용기가 없어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다. 그렇게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정부도 외면한 이 문제를 누가 해결해 줄 수 있을까?”

최근 들어 방송국 비정규직/프리랜서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이 속속 폭로되는 중이다. SBS를 비롯한 방송사의 상품권 임금 지급과 같은 몹쓸 관행이나 <화유기> 사건으로 촉발된 방송 스태프들의 최악의 노동 조건도 수면 위로 올라오는 중이다. 지난해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tvN 고 김한빛 PD의 사망도 방송계에 충격을 주기는 마찬가지였다. 

   
▲ 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회의실에서 열린 tvN 주말드라마 '화유기' 제작현장 추락사고 대책 수립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환균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그런 점에서, 서울시가 tbs 프리랜서의 정규직화를 추진하고 tbs 파견·계약직·프리랜서 노동자들의 노조 출범은 분명 괄목할만한 ‘사건’이다. 그간 곪은 대로 곪은 ‘슈퍼갑’ 방송국을 ‘몸’으로 지탱해온 비정규직/프리랜서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 변화의 물꼬를 틀 움직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에 발맞춰, 방통위를 비롯해 문화체육관광부, 고용노동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5개 부처와 9개 방송사업자(KBS, MBC, SBS, EBS, TV조선, JTBC, 채널A, MBN, CJ E&M)은 최근 논란이 되고있는 방송사와 외주사 간의 불공정 관행 개선을 위한 대책을 논의했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역시 25일 유료방송 업계 고용안정화 및 상생협력 점검 간담회를 열고 “외주 제작의 근로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천명했다. 지난달 19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표된 ‘방송프로그램 외주제작시장 불공정 관행 개선 종합대책’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작업은 이 방송 노동환경의 일대 개선이라는 그 어떤 정부도 손대지 못한 암 덩어리에 메스를 가져가는 것 까지는 성공한 듯 보인다. 과연 이 험난하고 어려운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을까. 

하성태 기자 

하성태 기자 woody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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