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인 “핵은 후손들 시각에서 봐야...핵 가지면 우리도 ‘불량국가’돼”

보수야당에서 제기되고 있는 ‘전술핵 재배치’론, 혹은 ‘핵무장론’과 관련,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가 “핵문제를 이야기할 때는 과거에 대한 집단적 기억이나 지금 내가 사는 이 순간의 안보도 중요하지만 우리 후손들이 살 환경을 어떻게 만들어주느냐는 시각에서 봐야한다”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 26일 열린 ‘10.4 남북정상선언 10주년 기념행사’에서 특강에 나선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

문 특보는 26일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10.4 남북정상선언 10주년 기념행사’에서 특강을 통해 “핵무장이나 전술핵을 찬성하시는 분들은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 많은데 그런걸 생각하셔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아울러 “제가 60대 후반인데 제가 이 세상을 떠난 다음 남게 될 대한민국은 핵무장한 대한민국, 미국의 전술핵이 배치된 대한민국을 원치 않는다”며 특강에 참석한 학생들에게 “핵 억지력이라는 개념, 공포의 균형, 상호보장된 파괴라는 그런 환경 속에서 왜 여러분들이 살아야 하나. 저는 반대다”라고 이야기했다.

문 특보는 “지금 북한을 불량국가라고 이야기하고 제재하고 고립봉쇄하는 것은 국제법과 규범을 위반했기 때문”이라며 “한국도 핵무기를 갖는다면 지금 미국 중심으로 만들어놓은 핵무기 관련 국제체제 하에서는 우리도 북한과 같은 불량국가가 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또한, “무역을 해서 상당히 많은 돈을 버는 (일부의) 분들이 밖에 나갔을때 핵무장 찬성론으로 나온다. 이해가 안된다. 유엔안보리에서 바로제재 결의안 나오면 수출부터 못할텐데”라고 꼬집었다.

문 특보는 “북은 북대로 그렇게 나오지, 미국은 미국대로 강경일변도지, 중국은 사드 때문에 등돌려있지, 러시아하고도 안맞는게 상당히 많다. 국내 여론은 분열돼 있다”며 “(문) 대통령이 상당히 답답할 것이다. 이 어려운 환경속에서 평화를 만들려니 쉽지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어 “정치경제용어에 ‘경로종속성’(Path Dependency)이라는 것이 있다. 지난 정부가 잘못된 정책을 만들면 경로종속성 때문에 새로운 것을 만들지 못한다. 그것에 자꾸 예속되고 함몰돼 버리는 것”이라며 “제가 볼때는 지금 대통령도 지난 9년간 보수정부들이 했던 정책과 제도의 희생양이 되고있지 않느냐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날 강연에서 문 특보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가장 바랐던 것은 어떻게 하면 유럽 안보협력기구같은 다자안보협력체제를 동북아에 만드느냐(하는 것)”이라며 “동맹을 넘어서는, 편가름의 외교를 넘어서는 지역질서를 만들 수 없느냐는 고민을 많이 했다. 당시 (제가) 동북아 위원장을 할 때 제게 주문하신 가장 큰 정책임무가 그 안을 개발하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강연에 앞서 문 특보는 “문재인 정부의 통일외교안보 특보로서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다. 10.4 남북정상회담에 참여했던 사람으로서, 대학교수로서 제가 느낀 바를 말씀드리려고 한다”며 “사적 의견이지 정부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과 허성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 백종천 전 청와대 외교안보실장,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전 통일부 장관),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 등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