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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에 광주시민은 ‘베트콩’이었나.. 美 비밀문서 공개 파장

기사승인 2017.08.21  10: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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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팀 셔록 “전두환, 베트남전 영향 받아.. 당시 광주시민은 한국 국민 아니었다”

1980년 5월, 광주시민에 대한 신군부의 무자비한 진압 작전은 전두환의 베트남전 경험 때문이라는 미국 국방정보국(DIA)의 비밀문서가 공개됐다.

21일 CBS <노컷뉴스>에 따르면, 미국 국방정보국이 1980년 6월11일에 생산해 본국으로 타전한 2급 비밀문서는 복수의 한국군 내부정보원의 말을 인용해 “한국군의 동떨어지고 잔인한 처리는 현 군부의 실세인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이 모두 베트남전에서 실전경험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노컷>이 입수해 보도한 해당문서는 특히 “한국군이 점령군의 태도를 견지하면서 마치 광주시민을 외국인처럼 다뤘다”고 적고 있다. 이와 관련해 <노컷>은 “문서에서 한 정보원은 베트남에서 미군이 양민을 학살한 마을인 ‘미라이(MY LAI)’에 빗대 광주를 ‘한국의 미라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고 부연했다.

미국 정부의 5·18 기밀문서를 공개한 팀 셔록 기자는 “DIA 문서에는 전두환 등이 베트남전의 영향을 받았다고 적혀 있다”며 “이들에게 광주시민은 적군, 베트남 빨갱이 같은 존재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들에게 광주시민은 진짜 한국 국민이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그런가하면 미 국방정보국은 한국군 정보원의 직접 진술을 통해 “전라남도 대중들이 길거리로 나온 것은 군대의 초기 진압이 잔인했기 때문”이라고 본국에 타전했다.

   
▲ <사진제공=뉴시스>

한편, 이같은 사실이 드러나자 서주호 정의당 서울시당 사무처장은 SNS를 통해 “반성없는 학살자 전두환과 그의 학살을 사실상 시인했던 미국…5.18 광주민주항쟁의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라면서 “학살의 책임자 전두환의 추징금 전액 추징하고 미국과의 식민지 조약들도 개정해야(한다)”고 촉구했다.

네티즌들도 “이런 비극을 저지른 이가 아직도 떵떵 거리면서 살고 있다니.. 비극이다”, “어찌 이런 일이, 전면 재조사해서 처벌해야 한다”, “베트콩 섬멸작전? 섬뜩한 정권이었네!”, “자국민을 정말 개돼지로 생각했군”, “진실은 언제 밝혀질 것인가?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자국민을 베트콩으로 봤다니 저런 게 인간인가. 참을 수 없다”, “지금이라도 전두환을 역사의 법정에 다시 세워 반드시 죗값을 치르게 해야”,

“모든 사실을 다 알면서도 용인한 미국의 양면성에 치가 떨린다”,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도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한 조사와 처벌이 필요하다. 이것은 국민의 목소리다. 꼭 해야한다”, “전두환은 학살자, 절대 잊지 말자”, “살인자가 회고록을 쓰는 사회가 대한민국이다. 이게 나라냐”, “전두환은 국민심판을 꼭 다시 받게 해야 된다”라는 등 성토를 쏟아냈다. 

다음은 CBS <노컷뉴스>가 입수해 공개한 미국 국방정보국(DIA) 비밀문서 전문이다. 

DIA 2급 비밀문서 전문

2급 비밀 
1980년 6월 11일 03:04Z
한국인에게 공개 금지

요약: 본 보고서는 최근 한국군 및 계엄령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OOO의 의견을 담고 있음. 

(2급비밀/외국공개금지) OOO(검정칠 처리)는 2명이 모두 "광주 폭동에 대한 한국군의 동떨어지고 잔인한 처리"라고 지칭한 사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음. 두 명 모두 군의 "잘못된 과잉대응"에 대해 놀라움과 괴로움을 표하면서 이는 현 군부의 실세인 전두환, 노태우, 장호영(정호용의 오기로 추정)이 한국전쟁이 아니라 베트남 전쟁에서 실전경험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평가하였음. 또한, 위 3명이 광주에 대해 취한 태도는 50년대 초반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선배 장교들의 그것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것이며, 60년대 초반의 유사한 사건에 비해 현재의 대응이 훨씬 가혹한 것도 이들이 베트남에서 경험을 쌓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고 하였음. OOO는 광주를 "한국의 미라이"라고 지칭하였고, OOO는 한국군이 "점령군"의 태도를 견지하면서 광주 시민을 외국인처럼 다뤘다고 말하였음. 총리마저 당시 담화에서 광주 시민들에게 "한국민의 품으로 돌아오라"고 하였다는 것임. OOO는 이 담화는 당시 전라남도를 별개의 집단으로 간주하던 계엄사령부의 태도를 반영한 것이라고 하였음. OOO는 전라도의 전통과 문화의 차이가 한 요인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만약 시민들이 다시 서울 등 여타 대도시의 길거리로 나왔을 때 공수부대를 필두로 한 군부의 진압이 광주에서처럼 가혹할 것이라고 예측하였음. 

본 보고서에 언급된 내용은 한국군의 가혹한 계엄통치에 대해 현재 한국인 일부에서 증가하고 있는 반감을 반영한 것임. OOO는 전라남도 대중들이 길거리로 나온 것은 군대의 초기 진압이 잔인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하였음. 

(다음 페이지) OOO 직접 증언에 따르면 군대가 배치된 후 학생 시위의 규모는 300명 정도로 아주 작았고 군대를 만나자 도망치려 했지만 한 학생 지도자가 포위된 채 대검에 찔렸다고 함. 도망쳤던 다른 학생들도 군인들이 추적하여 집에까지 들어가 끌고 나온 뒤 구타하고 체포하였음. 한 식당 주인은 학생들을 숨겨주다가 총에 맞았고 식당은 불에 탔음. 이러한 사건이 빈발하자 그전까지 집에 있던 광주 시민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음. OOO는 한국정부에 대한 전통적인 적대감이 한국군의 행동으로 인해 증오가 되었다고 하였음. OOO는 때에 따라 한국 정부에 저항하였지만 이전까지 그의 반대활동은 박정희 정권에 집중되어 있었고 극히 드문 경우에만 한국군을 향하였음. OOO는 5월 17일까지는 한국정부를 철저히 지지해 왔음. 광주 사건 이전까지 그는 일관되게 한국군을 칭찬해 왔음. 그의 발언에서 묻어나오는 느낌으로 볼 때 이는 그가 지지자에서 극도의 경멸로 완전히 돌아섰음을 보여주는 것임...(메시지 중단) 끝.

 

김미란 기자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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