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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근 사건④] 40년 만에 밝혀진 죽음의 진실.. 이수근은 어디에?

기사승인 2016.10.15  1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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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조카 배경옥 “인생의 황금기를 교도소서 보냈다…무죄? 기쁘지 않다”

“새까만 안경에 이수근, 코밑에 가짜수염 달고서, 홍콩 가는 비행기를 타고가다, 멋지게 꼬리 잡혔네.”

위 노래는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사이에 유행했던 노래로 남진의 ‘마음이 고와야지’ 가사를 개사한 곡이다. 이 노래는 이중간첩으로 위장 귀순한 이수근이 체포된 상황을 표현, 이 시절을 살았던 많은 이들은 이 노래를 따라 불렀던 것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반공이데올로기 시대를 대표한 이 노래는 한국의 반공 이념을 확고히 하고자 했던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대변한다. 그 때 이 노래를 통해 많은 사람들은 이수근이 이중간첩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1967년 3월 북한 조선중앙통신 부사장이었던 이수근은 판문점을 통해 남한으로 망명했다. 그는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고 거액의 정착금을 받았다. 유명세도 치렀다. 이수근은 곧바로 대학교수와 결혼했고, 중앙정보부 직원으로 특채됐다.

하지만 남한의 체제 선전활동에 이용되는데 점점 지쳐갔다. 1969년 1월, 이수근은 처조카 배경옥과 함께 홍콩으로 출국했다가 베트남에서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에게 체포됐다. 중앙정보부는 같은 해 2월 이수근을 위장한 이중간첩이라고 발표했고 법원은 이수근과 배경옥에게 사형을 선고, 이수근은 그 해 7월 2일 사형이 집행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위 노래를 통해 알 수 있듯 이중간첩 이수근에 대한 국민의 실망은 대단히 컸다. 중정에 의해 교묘하고 악랄한 간첩행위까지 알려져 이수근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은 분노로 바뀌었다. ‘북괴’에 대한 끝없는 적개심, 바로 그것이었다.

40여년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이수근은 지난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 조사를 통해 간첩으로 조작돼 사형 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다음 해 12월 처조카 배경옥은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무죄 선고 직후 배경옥 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뻐야 하는데 기쁘지 않다. 제 인생황금기를 그 안(교도소)에서 다 보냈기 때문에”(경향신문 2008년 12월 19일자)라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불법 수사와 잘못된 기소, 판결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이수근은 지금 어디에 묻혀있을까?

배경옥은 서울구치소를 통해 이수근의 행방을 문의했다. 서울구치소는 회신을 통해 이수근이 현재 경기도 고양시 벽제동 서울구치소 공동묘지에 합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줬다. 묘지를 찾은 이수근의 처조카 배경옥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벽제에 있는 서울구치소 묘소는 연고자 없이 사망한 재소자들을 같은 묘에 합장해 놓은 곳이기 때문이다. ‘합장 묘’에 합사된 유골이 무려 276기다.

합장에 대한 근거 제시를 요구하자 서울구치소는 공문을 통해 다음과 같은 이유를 밝혔다.

   

공권력의 잘못된 집행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고 사망한 이수근, 죽은 지 40여년 만에 억울한 죽음의 진실이 밝혀졌지만, 그는 아직도 억울하게도 270여명이 뒤엉킨 합동묘지 안에 묻혀있다.

   

 

   
   

 

 

변상철 사무국장, 류제성 변호사 knung07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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