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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사 내부 자료 “전두환, ‘광주 발포 결정’ 회의 참석”

기사승인 2016.05.19  10: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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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보안사 내부자료 입수.. “최규하, 계엄군의 집단 발포에 깜깜”

전두환 씨가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에 대한 계엄군의 발포 명령 책임과 관련해 “어느 누가 국민에게 총을 쏘라 하겠냐”며 발뺌했지만 이 같은 주장을 정면으로 뒤집는 보안사령부 내부 자료가 공개됐다.

<한겨레>는 전두환 정권 때 보안사령부가 만든 ‘제5공화국 전사’(이하 5공 전사)를 단독 입수, “80년 5월21일 오전 10시50분 국방부에서 이희성 계엄사령관이 주영복 국방부 장관에게 광주에 출동한 군인들의 자위권 발동을 건의하는 자리에 전두환 당시 합수본부장 겸 보안사령관이 참석했다고 나와있다”고 보도했다.

   
▲ <사진제공=뉴시스>

‘5공 전사’는 79년부터 81년 4월까지 5공화국 출범 전후 정치․사회 현안을 다룬 것으로, 1982년 5얼 신군부 실세인 당시 박준병 보안사령관이 6권의 책자와 3권의 부록으로 펴냈다. <한겨레>는 “이 책은 3질만 발행돼 청와대와 보안사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을 뿐, 내용은 공개된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 책 5.18민주화운동 부분에는 “(80년 5월)21일 2군사(령부)에서는 사령관 진종채 장군과 작전참모 김준봉 장군이 헬기편으로 육본으로 올라와 참모총장을 뵙고 이러한 현지의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고 자위권 발동을 건의하였다”고 돼 있다.

이어 “건의를 들은 참모총장 이희성 장군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고 하면서 ‘장관에게 직접 보고하자’고 하여 세 장군은 국방부장관 실로 갔다. 국방장관실에는 장관을 비롯해 합참의장 류병현 장군, 합수본부장 겸 보안사령관 전두환 장군, 수경사령관 노태우 장군, 육사교장 차규헌 장군, 특전사령관 정호용 장군 등이 기다리고 있었다”고 기술돼 있다고 <한겨레>는 전했다.

‘5공 전사’는 5월 21일 오전 10시50분에 군 자위권 발동이 결정된 것으로 보고 있다. 자위권 발동을 결정한 국방부 회의 2시간쯤 뒤인 이날 오후 1시 광주 금남로에서 시작된 시민에 대한 계엄군의 집단 발포는 오후 4시까지 이어졌고, 단 하루만에 34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런가하면 전씨는 앞서 <신동아> 6월호에서 계엄군의 발포 명령 책임을 회피하며 “보안사령관은 정보‧수사 책임자다. 보안사령관이 청와대를 꺾고 이렇게는(발포 명령을 내리라고는)절대 못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전씨의 주장과 달리 당시 국군통수권자인 최규하 대통령은 군이 시민을 향해 집단 발포해 사상자가 발생했는데도 관련 사실을 보고조차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겨레>는 “계엄군의 집단 발포에 대해 최규하 당시 대통령은 깜깜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정석환 전 중앙정보부 전남지부장 직무대리가 1995년 12월 27일 서울중앙지검 조사에서 “(집단 발포 이튿날인)80년 5월22일 밤 10시경 최규하 대통령이 전화해 ‘사격하는 군부대와 지휘관을 확인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고 전했다.

정석환 직무대리는 이와 관련해 “최 대통령이 군 지휘계통도 아닌 정보부 지부장에게 직접 전화해 물어본다는 것은 당시 계엄사로부터 어떤 상황 보고도 받지 못한 상태로 보인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미란 기자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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