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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주연 청와대 기자단 조연의 서툰 ‘개콘’

기사승인 2016.01.17  14:5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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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인의 본분과 사명은 어디로 사라졌나

지난 13일 열린 대통령 박근혜의 신년 기자회견은 2014년과 2015년에 비하면 기자들이 손을 들고 자유롭게 질문을 하는 ‘진일보’한 행사처럼 보였다. 청와대와 출입기자단에 관한 정보에 어두운 보통사람들의 눈에는 그렇게 비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자회견은 청와대와 기자단 간사들이 사전에 짜 맞춘 ‘각본’에 따른 것이었다.

<국민TV>의 ‘뉴스 K’가 사전에 입수한 ‘질문지’와 실제로 기자회견에서 나온 질문 내용은 대부분 일치했다. <미디어오늘>이 박근혜가 ‘대국민 담화문’을 읽기 전에 미리 입수한 기자들의 질문 순서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지켜졌다. 그런데도 청와대 대변인 정연국은 기자회견 전날인 12일 오후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기자들로부터 사전에 질문 내용을) 받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루 만에 들통이 날 거짓말을 한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오전 춘추관에서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기자회견 진행을 맡은 정연국은 마치 기자들이 자유롭게 박근혜에게 질문을 할 수 있다는 듯이 “손을 들어 질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권유’했다. 여러 명이 손을 들었지만 결국 그가 지명한 사람은 ‘각본’에 정해진 순서대로였다. 그는 예정된 13명의 질문이 끝나자 “오늘 질문은 여기까지 받도록 하겠다”며 회견을 끝내버렸다.

나는 지난해 새해 기자회견에서 청와대 출입기자단이 직무를 유기한 사실을 고발한 바 있다. 기자들이 노트북이나 펜도 갖지 않은 채 박근혜를 마주보는 자리에 나란히 앉아 단 한 마디 질문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에는 더 기막힌 일들이 벌어졌다.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관리들’과 입을 맞추어 질문 내용과 순서를 미리 정함으로써 박근혜가 답변 내용을 사전에 작성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한 것이다. 청와대 출입기자는 언론사가 파견한 사원이기에 앞서 대통령을 비롯한 공직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국민에게 알리면서 잘잘못을 가려야 하는 책무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현재의 청와대 출입기자 다수는 ‘춘추관’이라는 건물에 머물며 청와대 내부를 심층취재하기는커녕 기자회견에 조연으로 출연하거나 들러리를 서는 짓을 태연히 하고 있다. 그들은 언론인의 본분도 사명도 저버린 지 오래인 것 같다.

대통령이 새해를 맞아 국민들에게 국정의 현황을 설명하면서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자고 호소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기자회견이라면 미리 각본처럼 짜인 질문에 따라 사전에 준비한 답변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어서는 안된다. 정치선진국들의 경우를 예로 들 것도 없이,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각각 150 번의 기자회견을 가진 김대중과 노무현은 부분적으로 사전 조율을 한 경우가 더러 있었는지는 모르나, 비교적 자유롭게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답변했다. 그러나 임기 3년이 가까워지도록 겨우 5번밖에 기자회견을 갖지 않은 박근혜는 그 가운데 절반이 넘는 3 번의 신년 회견을 ‘담화문’ 읽기 또는 ‘각본’에 따른 질문과 대답 식으로 진행했다.

이번 신년 회견에서 박근혜는 종전과 조금 다른 면모를 보이기는 했다. 미리 작성된 ‘담화문’을 읽어 내려가면서도 고개를 숙이고 울먹이며 국회가 자신의 ‘관심법안들’을 빨리 처리해 달라고 호소하는가 하면 특유의 썰렁한 농담을 섞고, 구어체 직설화법을 구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북 관계, 경제위기, ‘위안부 문제’ 등에 관해 ‘남탓’을 하거나 ‘자화자찬’을 서슴없이 하는 데 대해서는 보수언론을 대표하는 조선·중앙·동아일보조차 사설을 통해 냉소적인 비판을 가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 담화 및 기자회견 중 취재진의 질문을 메모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이번 기자회견에 관해 외신기자들이 보인 반응은 대통령이라는 인물의 ‘언론관’이 세계의 비웃음을 살 수밖에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로이터통신>의 남북담당 특파원 제임스 피어슨은 기자회견이 시작되기 전인 13일 오전 10시 반쯤 “오늘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사전 승인된 질문들”이라는 글과 함께 질문 순서와 요지가 담긴 사전 질문지를 리트윗 했다. 아일랜드 저널리스트 존 파워는 자신의 트위터에 아래와 같은 글을 올렸다.

“한국의 대통령 답변을 위해 질문지들을 미리 제출받았다. 외국 언론은 배제됐다. 의심스러운 나라이다. 회견에 참석하는 기자들이 대통령을 위한 질문을 미리 제출하는 게 저널리즘인가?”

<워싱턴포스트> 도쿄 지국장 안나 파이필드는 기자회견을 사전에 공지해 달라고 청와대에 요청했지만 아무런 통보도 받지 못했다며 “중요한 것은 그것이 연극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내가 그 연극을 볼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나는 서울에 있다”고 트위터에 썼다.

박근혜가 언론을 ‘하수인’처럼 대하는 태도는 아버지 박정희를 닮았다. 그는 헌정을 뒤엎는 조치나 위헌적 법령을 발표할 때 달랑 ‘특별담화’ 한 장을 텔레비전에서 읽거나 대리인을 통해 낭독시켰다.

박근혜는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조금 다른 방식을 택했지만, 그가 받아든 ‘각본’은 KBS의 장수 프로인 <개그콘서트>의 잘 만들어진 ‘코너’보다 엉성하고 허점이 많았다. 작가팀이 구성한 대본과 개그맨들의 연기가 전성기 때만은 못하나, 지난해 ‘KBS 연예대상’에서 최우수 아이디어상을 받은 ‘민상토론’같은 코너는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 현실에 대한 어눌한 풍자와 진행자의 재치 있는 질문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청와대도 앞으로 각본에 따른 기자회견을 계속하려면 차라리 ‘민상토론’ 작가팀의 도움을 받는 편이 좋지 않을까? 

   
▲ <사진=KBS <개그콘서트> 민상토론 캡처>

※ 이 글은 자유언론실천재단(http://www.kopf.kr)에도 함께 게재되었습니다.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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