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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씨 “정부가 세월호 생존자들을 방치 한다”

기사승인 2015.03.27  16: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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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박스 인터뷰] “참사 뒤 모든 게 고통.. 긴급생계비 마저 끊겨”

   
▲ ©SBS
‘세월호 의인’ 김동수씨는 자신을 ‘죄인’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 당시 배 안의 소방호스를 자신의 몸에 묶고, 단원고 학생들을 구조했다. 침몰해가는 배 안에서 안간힘을 쓰며 홀로 승객들을 끌어올렸다. 덕분에 ‘파란바지의 영웅’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런데 그는 왜 스스로 ‘죄인’이라고 부를까.

김씨는 26일 <민동기의 뉴스박스>와의 인터뷰에서 그 이유를 밝혔다. 그는 “남들은 ‘의인’이라고 하지만 나는 죄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 많은 사람들이 살아 돌아오지 못했는데 나만 살아 돌아왔다”고 말했다. 불편한 몸 때문에 그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 [‘민동기의 뉴스박스’ 바로 듣기]

김씨는 지난 19일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 자택에서 흉기로 자신의 왼쪽 손목을 자해한 뒤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세월호 사고 때 겪은 트라우마가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았다. 김씨를 발견한 딸은 경찰에 신고했고, 긴급 출동한 119구급대가 인근 병원으로 옮겼다. 다행히 생명에 지장이 없었다.

자해를 한 배경에 대해 김씨는 “이유는 잘 생각이 안 난다. 그냥 손이 기어가는 느낌이 들고, 자꾸 아프니깐 쓸모없이 손을 갖고 있어 뭐하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김씨는 현재 경기 안산 정신건강 트라우마 센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근육 이완제를 맞고 있고, 침 치료와 물리치료도 꾸준히 받고 있다”며 현재 건강상태를 설명했다.

세월호 참사 이전, 김씨는 평범한 가장이었다. 화물기사인 그는 목포, 삼천포, 부산, 인천 등을 다니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틈틈이 마라톤도 즐겼다. 그러나 참사 이후 김씨의 체격은 눈에 띄게 수척해졌다.

   
▲ 2014년 4월 23일 SBS <8시 뉴스> 화면 캡처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상적인 경제활동은 불가능해졌다. 언론에서 그는 ‘영웅’이라고 불렀지만 세월호 참사 뒤 김씨의 집안은 엉망이 되었다. 세월호와 함께 1억 원에 가까운 화물차는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김씨 가족의 생계수단이었다. 그는 “아내가 대신 일을 하러 다니고, 주변에서 조금씩 도와주는 것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에는 복지부에 의상자 신청을 했지만 심사대상에서 제외됐다. 까다로운 자료 요청이 제동을 걸었다. 그는 “정부로부터 받은 보상은 세월호 생존자들에게 지급되는 긴급생계비 (108만원)을 제외하고 전혀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매달 나왔던 정부 지원금은 지난해 12월 끊겨 김씨는 또 다른 어려움에 부딪혔다.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김씨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제대로 보상을 해주지 않아서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는 “정부가 세월호 생존자들을 방치 한다”며 “그저 치료나 열심히 받고 싶다. (정부에) 바라는 거 없다”고 싸늘히 말했다.

“세월호 생존자들을 위한 정부 배려? 생각도 안합니다. 생각하면 뭐합니까. 되지도 않을텐데. 치료하는 거나 열심히 할 겁니다. (정부에) 바라는 거 없습니다.”

강주희 기자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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